1577년 11월 15일(음) .
서울에 소 역병이 돌아 전염으로 폐사하기를
겨울에 이르도록 그치지 않아
죽은 소의 수가 무려 600여 마리에 이른다.
지금이 공역(公役)의 때인데 수레만 있고 소가 없어
집집마다 슬피 우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다….(중략)
조선 선조 때 발행된 민간인쇄조보(朝報)
한성부 섹션에 실린 한문 기사 첫머리 내용입니다.
겨울 얼음 저장고 공사에 수레 1천 량이 필요한데
소를 구할 수 없는 안타까운 소식을 실었습니다.
조보는 조선시대 조정의 소식을 알리던 관보.
승정원이 선정한 정보를 기별청(조보소)의 기별서리가
기별체(난초체)로 필사해 고위관청에 배포한,
간에 기별(소식)도 안 간다던 그 '기별지(奇別紙)'입니다.
민간인쇄조보는 의정부, 사헌부 허가를 받은 민간인이
이 조보를 반출해 활자조판으로 발행한 것입니다.
목적은 단 하나, '정보로 돈을 벌자' 였습니다.
민간인쇄조보는 지금껏 기록으로만 전해왔습니다.
영천 용화사 지봉스님이 4년 전 경매장에서 발굴해
공개하면서 그 존재가 세상에 처음 알려졌습니다.
정축년 11월 6·15·19·23·24일 자와 날짜 미상 3건.
발굴 문건은 모두 8쪽입니다.
이 단서로 인쇄조보 추적이 시작됐습니다.
연구결과 목활자 인쇄본임을 밝혀냈습니다.
스님은 당시 목활자 조판 과정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2백장 인쇄에도 목판은 틀어짐이 없었습니다.
'하세월' 필사조보를 훌쩍 넘는 생산혁명이었습니다.
난해한 기별체와 단정한 활자, 읽기도 비교불가였습니다.
임금·왕실·6조·천문·인사소식에 사회이슈까지
섹션별로 편집된 1급 정보가 관청밖으로 쏟아졌습니다.
조보를 보기 어려웠던 사대부·양반들은 물을 만났습니다.
한 자 한 자가 귀한 정보, 출세의 동아줄이었습니다.
상상되는 인쇄조보의 위력. 스님은 무릅을 쳤습니다.
"내가 우연히 조보를 보건데...누가 인출하였는가"
그해 11월 28일, 선조는 크게 격노했습니다.
활자는 압수되고 제작자 30여 명엔 유배형이 내려져
인쇄조보는 발행 3개월여 만에 역사속으로 사라졌습니다.
1577년 간행 활자조판 상업일간신문 민간인쇄조보.
1660년 독일의 '라이프치거 차이퉁' 에 83년 앞서
'세계 최초 신문'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신문 3천203개, 인터넷신문 9천356개(2020년 9월).
444년 전, 세계 최초 유료 신문 등장 이후
공짜뉴스가 넘치고 가짜뉴스도 핫한 오늘입니다.
댓글의 품격은 또 어떤가요?
신문의 날(7일)을 맞아 새삼 신문을 되돌아봅니다.

※ 1577년 11월 15일 자 민간인쇄조보(한글 의역= 남권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김영주 경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명예 교수)
朝已定之事, [灯]論不當, 故不允.
조정에서 이미 정한 일을 맹렬히 논의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으므로 윤허하지 않는다.
星變測候單字, 今月十四日, 夜密(雲: 탈자?), 嗤尤旗所在, 不得看候啓.
성변측후단자에 "이번 달 14일 밤은 구름이 짙게 끼어 치우기(혜성) 소재를 관측할 수 없다"고 아뢰었다.
朝報 丁十一 十五.
조보 정축년 11월 15일.
[觀象監] 蚩尤旗上同.
[관상감] 치우기 관련 사항은 <성변측후단자>의 내용과 같다.
[漢城府] 啓目, 京城之內, 牛疫大熾, 專相染斃迄冬不止, 至於駕馬車, 而仆於路, 其倒死之數, 無慮六百餘首是白乎等用良.
[한성부] 계목에 따르면, 서울에 우역(牛疫)이 크게 돌아 서로 전염되어 폐사하기를 겨울에 이르도록 그치지 않고 죽은 소의 수가 무려 600마리나 되옵니다.
今遇公役有車無牛滿庭哀號慘不忍.
지금이 공역(公役)의 때인데 수레만 있고 소가 없어, 뜰에 가득 모인 사람들이 슬피 울부짖고 있으니 그 참상을 차마 볼 수가 없습니다.
聞公役不可緩是如, 枉示嚴威, 東縳而捶楚爲 白良置, 人不能自肩, 他無可駕之物是白去等.
공역을 늦출 수 없다는 말을 듣고 (공역 일꾼들에게) 위엄을 보이며 옭죄고 매질을 하더라도, 사람 어깨에다 (멍에를) 메게 할 수도 없고 달리 멍에를 씌워 수레를 끌게 할 만한 것도 없습니다.
若坐 視其然, 不爲之爲白在如中, 無以完公役, 而紓民怨是 白置.
그렇다고 만약 그대로 좌시하여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공역을 완수할 수 도 없고 백성들의 원성을 누그러뜨릴 수도 없사옵니다.
凌陰之役, 不遠而邇, 當用車千輛是白沙餘良.
능음(凌陰: 얼음 저장창고)의 일을 위해선, 머지않은 가까운 때에 응당 수레 1000량을 써야 합니다.
兮. 繕工監牒呈內, 竹箭洞新宮造成, 石子乙復役前 畢輸入.
그뿐만 아니라, 선공감(공역 담당 행정부서)의 첩정(牒呈: 상달 문서)에 '죽전동(竹箭洞: 남대문 근방) 신궁 조성에 쓸 자갈을 복역(復役) 전에 들여놔야 한다'고 했습니다.
亦戶曹以先可, 二百車價上下爲有昆, 及時 兮給輸入, 亦爲白有臥乎所, 亦當用車二百輛. 同價 布乙, 雖俵給車夫, 無以輸入.
또 호조(戶曹)에서도 수레 200량의 값을 미리 치러주며 제때에 사들이라고 했는 바, 마땅히 수레 200량을 써야 합니다. 따라서 같은 값의 베(布)를 비록 수레꾼들에게 나누어준다 해도, (수레를) 사들일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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