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가 읽은 책] 사랑해야 한다

자기 앞의 생(에밀 아자르 글/ 문학동네 / 2016년)

생을 사랑하는 일-정순희
생을 사랑하는 일-정순희

1975년 '에밀 아자르'란 가명으로 발표한 '자기 앞의 생'은 한 작가에게만 수상되는 공쿠르 상을 두 번째 받은 작품이다. 에밀 아자르가 1956년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수상한 로맹 가리였다는 건 그가 남긴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을 통해 알려진다. 그는 두 개의 이름으로 많은 작품을 발표했고, 정계와 예술계는 물론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던 스타 작가였다. 그러나 순탄하지 않은 결혼 생활을 끝내고 예순여섯 살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표현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생은 별처럼 찬란하고 아름답지 않다. 모모의 생은 더 그렇다. 너무 불행했기 때문에 자신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는 그런 곳으로 가 버리고 싶다고 내내 절규한다. 복통과 발작을 일으키고 똥까지 싸대면서 엄마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모모. 하지만 엄마는 결코 찾아오지 않는다. 상상 속 암사자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옷을 입힌 우산 아르튀르를 통해 스스로 생을 다독이는 모모는 어린 철학자 같다.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아빠와 엄마의 존재를 알게 된 모모는 비참했지만 아름다운 생 앞에 당당히 직면한다. 자기 앞의 생뿐 아니라 타인의 생을 이해하고 사랑하게 된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곳인 비송 거리의 사람들은 주류 사회로부터 밀려나와 있지만 사랑으로 충만하다. 창녀였던 로자 아줌마, 늙은 하밀 할아버지, 여장 남자 롤라 아줌마, 아프리카 이민자 자움 씨네 형제, 아랍인이나 유태인을 차별하지 않는 의사 카츠 역시 그런 사람이다. 창녀의 아이들을 맡아 키우는 로자 아줌마의 사랑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모모는 몸이 아픈 로자 아줌마와 끝까지 함께한다.

병세가 악화되는 로자 아줌마를 병원에 입원시켜야 한다는 카츠 선생님에게 로자 아줌마가 원하는 대로 해 주자는 모모의 이 말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아줌마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사람이에요. 의사들을 즐겁게 해 주자고 아줌마를 식물처럼 살게 해서 세계 챔피언이 되게 할 생각은 없어요. 내가 불쌍한 사람들 얘기를 쓸 때는 누굴 죽이지 않고도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다 쓸 거예요. 그건 누굴 죽이는 것과 같은 힘이 있대요."

모모는 자신의 불운한 생뿐 아니라 타인의 초라한 생도 진심을 다해 사랑한다. 마침내 생에 정복당하려는 로자 아줌마를 그녀의 소원대로 지하 동굴로 모시고 가서 마지막을 함께한다. 차마 아줌마와 헤어질 수 없어서 숨을 멈춘 지 삼 주가 지나도록 곁을 지킨다.

모모는 하밀 할아버지에게 물었던 말을 떠올린다.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그리울 것이다."

생은 가혹하고 잔인하다. 모모에게서 로자 아줌마를, 하밀 할아버지를 그리고 엄마 아빠를 다 낚아채 가버렸다. 그래도 우리는 생을 사랑해야만 할까? 모모는 말한다. 사랑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으니까.

정순희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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