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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우의 읽거나 읽히거나] 빚으로 빛을 남긴 사람 ‘고리오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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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임희근 옮김/ 열린책들 펴냄

고리오 영감.
고리오 영감.
백정우 영화평론가
백정우 영화평론가

1939년, 스콧 피츠제럴드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시나리오 손질을 맡는다. 당시 그는 매일 밤 3숟갈의 클로랄과 넴뷰, 다음날 아침까지 심장을 뛰게 하기 위한 강심제 디기탈린 48방울이 필요했다. 사치와 허영이 쌓아놓은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이 분야의 선배라면 18세기에 태어나 19세기를 살다 간 위대한 작가 오노레 드 발자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발자크는 매일 커피 50잔을 마시면서 하루에 15시간씩 20년 동안 97권의 책을 썼다. 인쇄와 출판으로 진 빚 9만프랑을 갚기 위해서였다. 사치와 허영 때문이건 빚쟁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이건 녹록치 않은 환경이 예술혼의 촉진제였다니.

1833년 12월, 발자크는 대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를 사실적으로 주시하는 소설의 연재를 시작한다. 정신 나간 낭비벽과 개인 빚과 빈곤 사이의 괴리 속에서 작품을 쏟아낸 발자크 소설의 뼈대를 이룬 작품이자 정수, '고리오 영감'이다. '고리오 영감'은 파리 사교계 입성을 꿈꾸는 청년 라스티냐크의 성장소설인 동시에 고리오 영감을 경유해 당대 프랑스 사회를 조망하는 사회비판서이기도 하다. 소설은 낮과 밤, 보케 하숙과 보세앙 자작 부인의 저택을 오가며 라스티냐크의 현재와 미래를 대조적으로 펼쳐내는데, 그 틈바구니에 세간의 관심에서 벗어난 고리오 영감이 있다.

경제학자와 통계학자를 합친 것보다 발자크에게서 더 많이 배웠다고 F.엥겔스가 말했듯이,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글을 쓴 발자크 소설에는 은행과 어음과 유산과 지참금과 차용증 등의 금융경제 용어가 빼곡하다. 심지어 채권자를 피해 파리 곳곳을 전전한 탓에 발자크 소설 속 파리는 구글맵 만큼(보케 하숙의 위치와 주변 환경을 설명하는 데만 4쪽이 필요할 정도로) 상세하게 기술돼있다.

'고리오 영감' 역시 돈에 관한 이야기로 넘친다. '고리오 영감'에서 발자크는 보케 하숙인들의 형편을 상세히 묘사하는데 고리오 영감이 쇠락하는 과정, 즉 처음에 1천200프랑 독채에서 3년 만에 540프랑인 작은 방으로 밀려나며 선생에서 영감으로 호칭이 바뀌는 과정을 무려 19쪽이나 할애한 점은 흥미롭다. 고리오 영감의 몰락과 비극적 최후 뒤에 무정한 두 딸이 있음은 물론이다. 발자크를 평생 쫓아다닌 채권자는 곧 고리오 영감의 두 딸과 다름없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발자크 평전'에 따르면 돈으로 빚을 갚기 힘든 사람이 감사와 사랑의 빚만이라도 갚으려고 애쓴 흔적이 말년의 발자크에서 보인다. 자기가 이미 패배한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년의 발자크는 빚을 모두 청산하지만, 고리오 영감은 자신의 장례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만약 사위와 딸들이 자네가 쓴 비용을 내지 않겠다고 하면, 묘비에 이렇게 새기도록 해. '레스토 백작 부인과 뉘싱겐 남작 부인의 아버지인 고리오 씨, 두 대학생의 비용으로 묻혀 여기 잠들다'라고."(415쪽)

고리오 영감은 두 딸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전 재산을 소진하고도 대학생 라스티냐크와 보케 하숙인의 추렴으로 치른 초라한 장례식으로 세상과 하직한다. 발자크는 라스티냐크가 도시를 굽어보며 "자, 이제 파리와 나, 우리 둘의 대결이다."(419쪽)라고 선전포고하던 페르라셰즈 묘지에 묻혔다. 마지막 거처는 빚쟁이들로부터 쉴 수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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