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달 25일 폐막한 제9차 노동당 대회 사업총화 보고를 통해 "동족 범주에서 한국을 영원히 배제할 것"이라면서 "가장 적대적인 실체와 상론할 일이 전혀 없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 출범 이후 지속되어 온 '자주파'와 '동맹파' 논란을 냉정히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북한의 이 같은 '적대적 두 국가' 주장은 그동안 여러 단계를 거쳐 기정사실화되었다. 김정은은 2023년 12월 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와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남북 관계를 더 이상 동족이 아닌, 사실상 교전 관계로 규정하고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명시했으며, 전쟁 시 점령·평정·수복 의지까지 공식화했다. 이후 평양의 30m 높이 '조국 통일 3대 헌장 기념탑'이 철거됐고, 김정일 전집에서 6·15 남북정상회담 발언록이 누락된 사실도 확인됐다. 주민들에겐 북한이 '불완전한 분단국'이 아니라 '완전한 독립국'이라는 인식을 강화하는 사상 교양이 진행되고 있다. 법령과 정책, 대남 기구 명칭에서도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 등 통일 지향 표현이 삭제·수정됐으며, 공식 매체에서는 '남조선 괴뢰' 대신 '주적 대한민국'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
군사 분야에서도 변화는 이어졌다. 2018년 9·19 군사합의는 사실상 파기됐고,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북측에는 철책과 방벽, 감시 시설이 재구축되고 있다. 남북 공동연락사무소와 군 통신선 등 대화 채널도 중단됐다. 김정은은 이번 보고에서 "선제공격 사명을 포함해 적대국에 대한 모든 물리력 사용이 이론·기술적으로 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모든 전략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친 핵 개발과 연관된다. 북한의 최종 목표는 핵 무력 완성과 핵보유국으로서의 정상 국가화다. 이번 당 대회에서도 "국가 핵 무력을 더욱 확대 강화하고 핵보유국 지위를 철저히 행사하겠다"고 밝히며, 미국이 헌법에 명기된 핵보유국 지위를 존중하고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할 경우 "좋게 지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며 대화의 여지를 남겼다. 이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략을 더욱 노골화한 신호로 읽힌다. 남한은 '적대국'으로 고정하고, 미국과는 '핵보유국 대 핵보유국'의 구도로 협상하겠다는 계산이다.
결국 김정은은 우리와 '평화적 공존'이 아닌 '적대적 대립'을 통해 정권 안정과 내부 결속을 도모하는 길을 선택했다. 중국·러시아와 관계 강화 역시 이러한 전략과 맞닿아 있다. 이는 한·미·일 안보 공조에 맞서 북·중·러 삼각 협력 구도를 구축함으로써 외교적 안전망을 확보하고 제재 압박을 완화하려는 계산된 행보다.
문제는 우리의 현실 인식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3·1절 기념사에서 "북측의 체제를 존중하겠다"면서 "페이스메이커로서 북·미 대화의 조기 성사를 위해 계속 지원할 것"임을 거듭 천명하였다. 그러나 김정은은 앞서 당 대회를 통해 이와 같은 유화적 태도가 "서투른 기만극"이라고 폄훼하며 일축한 바 있다. 한반도 평화공존을 향한 우리의 진정성이 상대의 전략 계산을 바꿀 것이란 기대는 점차 현실성을 잃고 있다.
최근 중동 사태 등 여러 변수가 남아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4월 방중 일정 등을 계기로 북·미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그러나 북한의 궁극적 목표는 핵 동결 또는 제한적 감축과 같은 부분적 조치를 협상 지렛대로 삼아 체제 보장과 제재 완화를 동시에 확보하는 데 있다. 북·미 대화가 실제로 성사된다면 오히려 '코리아 패싱' 우려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통일은 환상"이라며 남북 관계를 단절의 길로 돌려세운 지금, 20년 묵은 '자주파'와 '동맹파' 논쟁은 사실상 의미를 상실했다. 더 이상 진영 구호에 머물 여유는 없다. 북한 전략의 구조적 전환을 직시하고, 이에 상응하는 냉철한 국가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다.
우리 헌법이 규정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 기조 하에 대화의 문은 열어두되, 굳건한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북한의 전략에 휘말리지 않아야 한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한·미 간 핵 계획 공동 수립 및 연합 억제 체계 강화를 제안하였다. 정치지도자에게 외교적 레토릭은 필요하지만, 현실에 대한 인식만큼은 냉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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