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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매국 계약' 논란이 치적용 제물이었다면 [가스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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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정상회담을 일주일 앞둔 18일 오후 6시 "尹 무리수에 K-원전 '50년 족쇄'… 美에 원전 1기당 1조원 보장"이란 한 경제지 단독 보도가 나왔다. 연초 이뤄진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의 특허 협상 계약서 내용을 폭로하는 기사였다. 윤석열 정부가 체코 원전 수주를 성사 시키기 위해 웨스팅하우스와 불평등 계약을 맺었다는 내용이었다.

다음날에도 그 경제지 단독 보도는 이어졌다. 불평등 계약 탓에 한국은 미국부터 체코 제외 유럽, 일본까지 핵심시장을 웨스팅하우스에 넘겨주고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지역으로만 수출이 가능하다는 보도였다. 보도 직후 대통령실은 즉각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했다. 비슷한 시간 더불어민주당은 이 계약이 "기술 주권, 원전 주권을 팔아먹고 국부를 유출시키는 매국 행위"라며 철저한 진상조사를 발표했다.

원전주가 흔들렸다. 첫 보도 뒤 열린 19일장에서 한수원에 원전 기자를 공급하는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전일대비 -8.6% 하락했다. 20일에는 -8.74% 하락으로 시작해 장중 -14.12%까지 내렸다.

묘한 흐름이 감지된 건 20일 오전 11시 일이다. 한 언론은 "K-원전, 美 진출한다… 한미 정상회담서 협력 강화 논의"라는 단독 기사를 냈다. 장중 -14.12%까지 급락하던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결국 -3.53%로 낙폭을 크게 줄이고 마감했다. 저녁에는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합작회사를 만들 것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이튿날 두산에너빌리티 주가는 전일 대비 +7.14% 상승했다. 두 보도 모두 이 좋은 소식이 한미정상회담을 기점으로 이뤄질 거라는 '정치권 관계자'를 인용한 보도였다.

사실 계약서 관련 최초 보도엔 새로운 내용이 전혀 없었다. 웨스팅하우스에 주는 로열티 4천800억원은 원전 2기 전체 수주 금액 25조원의 2% 미만으로 통상적인 로열티보다 낮다. 원전 2기에 대한 물품 계약 1조8천억원도 전체 수주 금액 대비 유의미한 수준이 아닐 뿐 아니라 원료나 일부 품목은 애당초 한국에서 조달이 불가능하다. 지역 제한의 경우 이미 지난 3월 기사화 된 바 있다. 게다가 한수원 외 두산에너빌리티와 같은 국내 원전 관련 기업은 이 계약과 무관하게 유럽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이틀 간 벌어진 이 사태 흐름을 보면 '정치 공작'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기업인 한수원의 계약서가 언론에 유출됐다. 이미 알려진 내용이지만 계약서가 입수됐다는 이유로 기사는 대통령실과 민주당의 '윤 정부 매국 프레임' 땔감이 됐다. 주가는 급락했다. 그러다 정치권 관계자발로 한미정상회담을 기점으로 K-원전이 미국에 진출하고 한수원과 웨스팅하우스가 합작회사를 만들 것이란 취지 보도가 나왔다. 윤 정부의 실패를 이재명 정부가 해결하는 모양새가 만들어졌다.

이 모든 게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통령 치적을 쌓기 위한 시도였다면 '시장'은 무슨 생각을 할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번 정상회담이 이재명 정부가 자랑할만한 성과로 이어지길 바란다. 하지만 주가 폭락과 계약서 유출에 따른 법적 위험은 왜 시장이 짊어져야 하는 것일까. 이틀 간 원전주는 급락했고 많은 투자자들이 우려 속에 주식을 던졌다. 이틀 간 두산에너빌리티 주식은 폭락했고 거래량은 각 3천468만주와 6천295만주로 직전 거래일 대비 3배~6배 이상 많았다.

뒤늦게 대통령실은 원전 관련한 논란이 한미정상회담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 우려된다며 민주당에 자제를 요청했다고 한다. 원전은 수십 년 단위로 진행되는 국가 단위 사업이다. 단순히 전 정권이 진행한 일이라고 헐뜯어 소중한 원전 사업을 자기 치적 쌓기용 제물로 쓴다면 누가 한국을 수십 년 단위 계약 대상으로 신뢰할 파트너라 할 수 있을까.

최재리 자산운용사 팀장

*가스인라이팅(Gas Enlighting)은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칼럼 공간입니다. '가스라이팅'은 1930년대 가스등을 사용하던 시절 파생된 용어입니다. 가스등을 조금씩 어둡게 해 누군가를 통제하는 걸 의미하는데요 '가스인라이팅'은 그 반대로 등불을 더 밝게 비춰주자는 뜻입니다. 젊은이들의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자주 선보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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