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배송 전면 금지를 둘러싼 논의가 정치권과 노동계를 중심으로 확산되면서, 물류 현장과 소비자 사이에 거센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배송 기사, 전세버스 운전자, 농어업인, 중소상공인, 온라인 쇼핑업계는 물론, 소비자 단체들까지 일제히 반대 입장을 내고 있다. 현장에서는 "책상 위에서 결정된 탁상 행정이 서민의 일상을 무너뜨릴 것"이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전국택배노조는 지난달 22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출범한 '택배 사회적 대화 기구'에서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의 새벽배송을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공식화했다.
택배노조는 "이 시간대는 택배 노동자에게 가장 위험한 근무 시간으로, 수면권과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자정까지의 배송과 오전 5시 이후 배송은 계속되며, 긴급한 물품은 사전 설정을 통해 기존처럼 수령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반대 여론은 잦아들지 않았다.
쿠팡 위탁 택배기사 1만여 명이 가입한 쿠팡파트너스연합회(CPA)는 지난 3일 성명을 내고 "심야 배송 중단은 사실상 수천 명의 해고와 다름없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CPA가 자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새벽배송 기사 2405명 가운데 93%가 '심야 배송 제한'에 반대했고, 일각에서 대안으로 제시된 주·야간 교대제에 대해서도 84%가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전세버스 업계도 가세했다. 전국전세버스생존권사수연합회(전생연)는 4일 성명을 통해 "야간 배송이 멈추면 우리 업계도 함께 멈춘다"며, 새벽배송 중단 논의 철회를 촉구했다. 안성관 전생연 위원장은 "수많은 전세버스 기사들이 야간 운행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들을 일방적으로 일터에서 밀어내는 발상은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현재 쿠팡 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 인력을 실어 나르는 전세버스는 약 1000여 대로 추산된다. 컬리, CJ대한통운 등의 야간 물류에도 800여 대 이상의 전세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전생연은 "우리는 단순한 교통 수단이 아니라, 물류 근로자들의 안전한 출퇴근을 책임지는 생존 기반"이라며 "새벽배송이 중단되면 수백 개 전세버스 업체와 기사들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고 주장했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도 이날 성명을 통해 새벽배송 금지 논의에 강한 우려를 표명했다. 협회는 "새벽배송은 이미 국민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은 필수 서비스이며, 단순한 편의를 넘어 국가 물류 시스템의 핵심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협회는 소비자 불편이 현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새벽배송은 맞벌이 부부, 1인 가구, 영유아를 둔 가정의 아침 일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생활 기반"이라며,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2024년 소비자시장평가지표'에서 71.8점을 기록하며 40개 주요 서비스 중 1위를 차지했다"고 강조했다.
지방과 도서산간 지역에서의 의존도는 더욱 크다. 협회는 "새벽배송은 이른바 '식품 사막화' 지역에 신선식품을 공급하는 유일한 통로로 작용하고 있다"며,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새벽배송이 도입되지 않은 지역의 소비자 중 84%가 서비스 도입을 원한다고 응답했다"고 설명했다.
물류업계에서는 새벽배송 금지가 농어업인과 소상공인의 판로 축소로 직결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협회는 "새벽배송을 통해 신선식품을 안정적으로 판매해온 농어업인들은 배송 중단 시 상품 가치 하락과 저온 운송 비용 증가라는 이중고를 겪게 될 것"이라며 "중소상공인 역시 주요 판매 채널이 줄어드는 동시에 플랫폼과의 가격 협상력까지 약화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국물류과학기술학회가 지난 7월 11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새벽배송 종사자들은 야간 근무를 선호하는 이유로 '교통 혼잡이 적다'(36.7%), '수입이 높다'(32.9%), '낮 시간대의 개인시간 활용'(20.7%) 등을 꼽았다. 물류업계는 "야간 노동이 강제된 것이 아니라 근로자들의 자율적인 선택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새벽배송은 기술 집약형 물류 시스템의 대표 사례로도 꼽힌다. AI 수요 예측, 자동화 분류, 콜드체인 시스템 등 첨단 인프라가 총동원되는 구조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는 "새벽배송 중단은 곧 라스트마일 물류 혁신의 후퇴를 의미하며, 전자상거래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야간 배송이 멈추면 센터 분류, 간선 운송, 지역 거점 분배 등 모든 단계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전체 유통 시스템이 비효율적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온라인쇼핑협회에는 지마켓, 쿠팡, 네이버, 11번가, SSG.COM, 롯데쇼핑e커머스, 현대홈쇼핑 등 국내 주요 플랫폼을 비롯해 약 100여 개 유통 기업과 1,000여 개 영세 소상공인이 가입돼 있다.
이들은 "야간 노동 전체를 위험한 노동으로 일반화하고, 강제로 규제하는 것은 수많은 생계형 일자리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새벽배송 제한은 단순한 물류정책이 아니라 국가 산업 전반의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소비자단체들도 반대 입장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소비자주권시민회의는 최근 "심야배송 제한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오히려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조치"라며 "정책 결정에 앞서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충분히 청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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