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시스 올덤 켈시(Frances Oldham Kelsey)를 아시나요?
켈시는 캐나다계 미국인 약리학자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근무할 당시 '탈리도마이드 사건'으로 유명인이 됐다. 지금까지 미국 내에서 거대 기업과 이권에 맞선 가장 위대한 공무원으로 평가받는다.
1960년 8월 FDA 의약품 검열관으로 입사한 켈시는 탈리도마이드라는 진정제의 적합성을 검사했다. '업자'들의 기대와 달리 그녀는 승인을 거부했다. 서류 및 자체 실험자료 미비와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 검토 불충분 등이 이유였다.
특히 탈리도마이드 복용의 부작용으로 보고되는 사례에 주목한 켈시는 안정성에 대한 더 많은 증거를 요구하면서 신념을 지켰다.
이에 제조회사는 그녀의 상사에게 전화를 거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압박했다. 하지만 켈시는 굴복하지 않았다.
이듬해 8월 대반전이 일어난다. 유럽에서 탈리도마이드가 기형아 출산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특히 약이 회수되기 전 이미 탈리도마이드 때문에 전 세계에 1만 2천 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났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켈시가 이 약품 승인을 거부한 덕분에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미국 정부는 그녀에게 공무원 최고 영예의 상을 수여했다.
시선을 우리나라로 돌려보자. 한국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있었다.
시중에 판매되던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사람들이 사망하거나 폐섬유화 등 폐질환에 걸린 사건이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17년 동안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돼 사망한 사람만 최소 1천740명으로 집계됐고 6천명이 넘는 환자들이 각종 질환으로 지금도 고통 받고 있다.
소비자들은 가습기에 낀 (물)때를 제거하는데 효과적인 물질을 가습기 속에 넣기만 하면 되는 편리함 때문에 해당 제품을 소비했다가 청천벽력 같은 재앙에 희생됐다.
당시 가습기 살균제는 공업생산품으로 분류돼 출시 전 공공기관 차원의 인체유해실험도 진행되지 않았다. 생산회사의 양심에 소비자들의 건강이 좌우되던 시대였다. 하지만 기업들은 국민 생명보다 이익이 먼저였다. 정부도 관련 감독제도가 없다는 이유로 나 몰라라했다.
심지어 희생자가 늘어나고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기업은 해당 사실을 은폐하거나 조작하기 바빴고 정부는 기업과 소비자 사이의 문제라고 뒷짐을 졌다.
훗날 전문가들은 가습기를 통해 기화된 화학물질이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흡수되었을 때의 위험성을 간과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런데 말입니다. 피해가 확산할 당시 국내 전문가들은 해당 제품들의 위험성을 정말 몰랐을까요?'
최근 대학교에서 화학을 가르치는 동창을 만났다. 그는 "사전에는 알기 어려웠을 것이고 사태 초반에는 '뭔가 잘못됐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라며 "그 다음은 사회적 시스템과 분위기가 전문가들의 대응 방향을 가르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양심을 지키기는 미국에서도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켈시가 미국 공무원 최고 영예의 상을 받은 것이다.
한국은 학연·지연·혈연 등 집단문화가 강한 나라다. 집단 내에서 입 바른 소리를 좀 하면 '건방지게, 너만 잘 났느냐', '모난 돌이 정 맞는다', '대세를 거스르지 마라' 등의 핀잔도 듣는다.
선진국일수록 각 분야의 전문성을 인정하고 그 전문성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사회시스템을 설계·운용한다. 국민들도 전문가들의 식견과 소신에 힘을 싣는다.
대법원장 정도면 법조계 최고 수준 전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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