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잇달아 공개된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과 '가장 존경하는 영부인' 조사 결과를 나란히 놓고 보면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두 조사 모두 펜앤마이크가 여론조사공정에 의뢰해 이달 실시했다. 대통령 조사는 지난 4~5일, 영부인 조사는 18~19일 각각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우선 대통령 조사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 32.9%, 노무현 전 대통령 27.0%, 김대중 전 대통령 12.6% 순으로 1~3위를 차지했다.
사실 이 구도 자체는 새롭지 않다.
한국갤럽이 2024년 3월 22일부터 4월 5일까지 전국 만 13세 이상 1777명을 대상으로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을 자유응답으로 물었을 때도 노무현 전 대통령 31%, 박정희 전 대통령 24%, 김대중 전 대통령 15%가 1~3위였다.
그런데 당시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이후 계엄과 탄핵, 조기 대선, 정권교체까지 한국 정치의 판을 뒤흔든 굵직한 사건이 이어졌지만 2년 뒤에도 상위 3명의 얼굴은 그대로였다.
순서만 노무현-박정희-김대중에서 박정희-노무현-김대중으로 바뀌었다. 이번 조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격차도 5.9%포인트(p)로 아주 크게 벌어진 것은 아니다.
결국 1·2위가 서로 자리를 바꿀 수는 있어도 朴·盧 두 사람이 앞서고 DJ가 그 뒤를 잇는 큰 틀은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계엄 전에도 박정희·노무현·김대중…2년 지나도 '3강'
한국갤럽 자료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구도는 꽤 오래전 형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2014년 조사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 32%, 박정희 전 대통령 28%, 김대중 전 대통령 16%가 1~3위였다. 2019년에도 이들 세 사람이 상위 3명을 차지했다.
결국 최근 10여년간 역대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억은 박정희·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상당히 굳어진 모습이다.
정권은 바뀌고 정치 지형은 요동쳤지만, 이미 형성된 역대 대통령에 대한 장기적 평가는 그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인 셈이다.
◆더 눈에 띄는 변화…20·30대도 박정희 1위
그런데 세대별 결과로 들어가면 3강의 디테일이 달라졌다.
이번 조사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18~20대에서 32.6%, 30대에서 39.2%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40대와 50대에서 각각 40.0%, 42.6%로 가장 높았다.
'젊은층은 당연히 민주당계 전직 대통령을 더 선호한다'는 과거 도식을 흔드는 변화다.
2024년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10~50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선호가 가장 높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은 60대 이상에서 강했다. 2019년 조사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 선호는 10·20대에서 5%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오히려 20·30대에서 앞섰다. 한 차례 조사만으로 장기적인 세대 이동이 완성됐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최근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비슷한 방향의 단서는 반복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지난 10월 12~16일 실시된 리얼미터 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전체 국정수행 긍정평가는 37.3%였지만 20대는 28.7%, 30대는 28.0%에 그쳤다. 특히 30대는 직전 조사보다 3.3%p 하락했다.
최근 조사들을 종합하면, 적어도 '젊은층=민주당계 정치인·전직 대통령에 우호적'이라는 오랜 공식은 과거보다 약해지고 있다는 흐름이 읽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20·30대에서도 1위를 차지한 이번 결과가 단발성인지, 아니면 최근 청년층의 정치 성향 변화가 역대 대통령 평가에까지 번지고 있는 것인지는 앞으로 비슷한 조사에서 계속 확인해볼 대목이다.
◆대통령은 넘어도 영부인은 못 넘나…육영수 44.2%
두 번째 조사에서는 또 다른 장면이 등장한다.
10월 18~19일 실시된 '가장 존경하는 영부인' 조사에서 육영수 여사는 44.2%로 1위를 차지했다.
2위 이희호 여사 20.4%와는 23.8%p 차이다. 두 배가 넘는다.
같은 달 실시된 대통령 조사에서 남편 박정희 전 대통령은 32.9%였다. 물론 서로 다른 날짜와 문항, 선택지를 사용한 별도 조사인 만큼 단순히 "육영수가 박정희보다 11.3%p 더 인기 있다"고 단순 비교할 순 없다.
그래도 한 가지는 눈에 띈다. 역대 대통령 조사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앞선 사례가 이미 있다. 2024년 한국갤럽 조사에서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31%, 박정희 전 대통령이 24%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역사적 선호도에서 다른 대통령에게 1위를 내준 적이 있다. 하지만 영부인 쪽에서는 육영수 여사의 우세가 훨씬 독보적으로 나타난다.
육영수 여사 이후 이희호·권양숙·김윤옥·김정숙 여사 등 여러 영부인이 있었고 각자 복지·여성·문화·외교 등의 영역에서 독자적인 행보를 구축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후대 대통령 배우자들의 공개활동에서도 육영수 여사는 반복해서 롤모델처럼 소환돼왔다. 어려운 이웃 방문, 사회복지 활동, 민원 청취, 한복을 활용한 공식 의전, 대통령과 분리된 독자 일정 등 오늘날 익숙한 '영부인 행보'의 상당 부분은 육영수 여사 시절 이미 강한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반세기가 지나도록 후대 영부인 가운데 대중적 기억에서 육영수 여사를 완전히 넘어선 인물은 좀체 나타나지 않는 모습이다.
이번 조사에서도 육영수 여사는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71.1%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무당층에서도 45.9%를 차지했다. 호남을 제외한 모든 지역과 모든 연령층에서 1위였다.
이걸 단순히 보수 지지층의 선택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왜 육영수의 기억은 더 오래 남았나
여기에는 '기억의 정치'가 작동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떠올리면 산업화와 경제성장이라는 긍정 평가와 동시에 유신체제, 권위주의 통치, 인권침해라는 역사적 논쟁이 함께 따라붙는다.
반면 육영수 여사는 직접 국정을 운영한 대통령이 아니었다. 사회사업과 복지활동, 서민적 이미지, 한복과 절제된 의전 등이 반복적으로 기억됐고, 여기에 1974년 박정희 대통령을 겨냥한 총격으로 목숨을 잃었다는 비극적 결말까지 더해졌다.
역사적 평가는 시간이 흐를수록 공과가 추가되고 재해석된다. 그러나 특정 인물에 대한 대중의 기억은 반드시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반복적으로 소비되는 몇 개의 장면과 서사가 다른 기억을 밀어내면서 더 단순하고 강한 이미지로 굳어질 수도 있다.
육영수 여사에게는 '봉사하는 영부인' '서민적인 영부인'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영부인'이라는 이미지가 반세기 동안 축적돼왔다.
일종의 '기억 강화'다.
육영수 여사의 모든 행보를 역사적으로 완벽하게 복원한 결과라기보다 후대에 남은 몇 가지 강한 장면이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며 하나의 전형적인 '영부인상'으로 굳어졌다고 볼 수도 있다.
그래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선호도 1위를 내준 적이 있어도, 영부인 조사에서는 육영수 여사를 넘어서는 인물이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 독특한 구도가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암살자(들)'도 기억 다시 깨웠나
여기에 최근 영화 '암살자(들)' 논란도 하나의 효과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영화가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을 소재로 삼으면서 개봉 이후 역사왜곡 논란과 정치권 공방이 이어졌다. 결과적으로 육영수 여사의 죽음과 당시 상황이 한동안 뉴스에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이번 조사 결과를 영화 한 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미 존재했던 육영수 여사의 비극적 이미지와 향수를 다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됐을 가능성은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면서 대통령 조사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이 1위를 기록해 실제 부부가 같은 달 각각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과 '가장 존경하는 영부인' 1위에 오르는 특기할 만한 결과도 만들어졌다.
◆1~3위도 실제 세 부부…그러나 진영별로 갈렸다
1위끼리만 그런 것도 아니다.
대통령 조사 상위 3명은 박정희·노무현·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영부인 조사 상위 3명은 육영수·이희호·권양숙 여사였다. 순서는 2·3위에서 뒤바뀌었지만 결국 같은 세 부부가 두 조사의 상위 3자리를 차지했다.
다만 지지 정당별로 들어가면 진영색은 뚜렷했다.
대통령 조사에서 국민의힘 지지층은 박정희 전 대통령을 56.8%, 민주당 지지층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54.9% 선택했다. 영부인 조사에서도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육영수 여사가 71.1%, 민주당 지지층에서는 이희호 여사가 40.9%로 가장 높았다.
양 진영에서 생각하는 '대표 대통령'과 '대표 영부인'이 상당 부분 갈려 있는 셈이다.
3강은 이미 굳어진 모습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젊은층이 과거와 다른 선호를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육영수 여사의 활동 시기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서조차 육영수 여사가 1위를 유지한다는 점은 따로 연구 과제로 삼을 만하다. 이는 개인적 경험에 따른 기억이 아니라 부모 세대의 기억, 교육, 미디어, 사진과 영상, 정치적 담론 등을 통해 전승된 '간접 기억'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일 수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주목할 것은 지금의 20·30대가 시간이 흐른 뒤에도 같은 역사적 인물들을 기억하고 평가하는 방식이 유지되느냐다. 이는 특정 정당의 향후 득실을 예측하는 문제라기보다 세대교체가 한국인의 역사 인식과 정치적 기억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관찰 지표가 될 수 있다.
두 조사는 역사적 공과를 정밀하게 평가한 성적표라기보다 한국 사회가 과거의 대통령과 영부인을 어떤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억의 정치'에 더 가깝다. 그리고 그 기억이 세대교체 속에서도 유지되는지, 혹은 새로운 인물과 사건에 의해 다시 쓰이는지는 향후 한국 정치에서 과거가 현재의 선택과 인식에 어떤 방식으로 남는지 살펴볼 수 있는,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지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 조사 개요]
조사기간: 2026년 10월 4~5일
조사대상: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
조사방법: 구조화된 설문지를 이용한 무선 ARS 전화조사
표본추출: 무선 RDD 100%, 성·연령·지역별 인구비례 할당추출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 3.1%
조사의뢰: 펜앤마이크
조사기관: 여론조사공정㈜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가장 존경하는 영부인 조사 개요]
조사기간: 2026년 10월 18~19일
조사대상: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2명
조사방법: 무선 ARS 전화조사
표본추출: 무선 RDD 100%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 3.2%
조사의뢰: 펜앤마이크
조사기관: 여론조사공정㈜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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