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설-선인장이야기

난 혜수와 내 결혼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게 부질없이 느껴져서 가방을 챙겼다. 혜수는 카페의 문쪽에 시선을 박은 채 꼼짝도 않았다. 나도 혜수의 눈길을 따라 몸을 돌렸다. 어떤 남자가 막 문을 밀고 들어서는 중이었는데순간적으로 그가 혜수와 무관한 사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생각과는 달리 그는 다른 자리에 가서 앉았다.혜수가 한참동안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걸 알고서야 혜수에게도 슬쩍 손을들어 아는 척을 했다. 혜수도 똑같이 손을 들어 보였지만 그뿐이었다. 혜수의 눈이 빛났다. 어디선지는 몰라도 나는 방금 혜수의 얼굴에 잠시 스쳐 지나갔던 그 비슷한 표정을 틀림없이 본 것 같았다. 영화나 텔레비전 드라마에서였을까?

가벼운 한숨을 내어 쉬며 눈은 슬프게 빛나던 그 짧은 순간의 표정이라니.그건 무엇에겐가 영혼이 사로잡힌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눈빛이요, 얼굴이었다.

혜수는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서서 나에게 어서 나가자는 손짓을 했다. 과하게 마신것 같지도 않았는데 약간 몸을 비틀거렸다. 내가 잡아 주겠다는 시늉을 하는걸 슬쩍 뿌리치며 술값을 치르곤 앞장서서 카페를 나섰다. 나도 이삿날 바깥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보냈구나 싶어 서둘렀다. 어머니가 뭐라고 하실는지.

카페의 문을 밀고 나서자 어디선가 달착지근한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맡아졌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이런 도심에서 꽃향기를 맡을수 있다니.늘 공기가 일정한 공간만을 빙빙 돌며 후터분하게만 느껴지던 여름밤만 계속되어 왔었는데 어쩐 일인지 오늘 밤만은 제대로 바람을 느낄수 있었다. 언뜻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파랗고 큰 달이 구름 사이를 역시 바람을 타고재빨리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머릿속에 문자로는 결코 옮겨 놓을수 없는 선율을 떠올리곤 되풀이해서노래하며 빠르게 걸었다. 흠으므므, 흠으므므. 흠으므므믓. 얼마를 그렇게걸었을까. 내 생각이 혜수에게 미쳤을 때, 어이없게도 그녀는 내옆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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