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선인장이야기(35)

차를 다 마실 즈음, 혜수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는 한 예로 음악을 겨우찾아내었다.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웬지 내가 말로 하지 못하는 것들을 표현한 것 같다고 느낄 수 있는데 그런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말로 표현된 것은 음악으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음악을 꼭 말로 풀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나는 언뜻 하였다.그 뒤로 몇장을 계속 읽어 나갔지만 혜수의 노트에는 내가 보기에는 별 중요하지도 않아 보이는 생각들을 잔뜩 늘어 놓고 있었다. 역사적인 사실들에 대해 나름대로 주석을 달거나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 두었거나 음악을들으며 느낀 점들, 그림을 보고 생각한 것들을 되는대로 적어둔 것이었다.내가 한번도 주의를 기울여 읽어보지 않은 책들이 대부분이라 나는 읽기를그만두었다.

대신 나는 시를 잔뜩 적어놓은 처음의 노트를 다시 뒤적였다. 앞의 노트들이워낙 내가 생각해본 적 없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어서인지 차라리 내겐 혜수가 적어놓은 시들이 더 이해하기 쉬워 보였다. 그러나 그조차도 사실은 제목에서부터 질려버린 게 많았다.

{동그란 굽은 원}, {떠나지 않는 개}, {파란색 마음을 지우며}, {노래속 세상에서 산다는 것}등등 혜수가 쓴 시들의 제목은 무슨 말인지를 오래 생각해봐도 황당하기만 해 보였던 것이다. 도대체 혜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중 그래도 읽기가 좀 쉬워 보이는 시를 한편 골라 읽어 보았다.{나, 전생에는}

나,

전생에는 이름없는 산 중턱에

흐드러지게 핀 풀꽃이었네,

나,

전생에는 한들거리며 울리던

바람종이었다네.

끝없이 우렁찬 숲의 푸르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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