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박만태 이경철 김집 등을 중심으로 경북학생육상경기연맹(이하 연맹)이 결성됐다.연맹은 해방후 학생들 사이에 새롭게 일어나던 육상열기를 한데 모아 체계적인 훈련과 경기를 벌여 이후 지역육상이 전국무대를 석권할수 있는 실질적인 기틀을 마련해 나갔다.
연맹의 주축은 1946년 신설된 사범대 체육과의 박만태 이경철 이명환, 농대의 김홍대, 의대의 김집 등 당시로는 내로라하는 선수들.위원장을 맡은 박만태는 110m허들, 400m허들, 10종경기 등을 주종목으로보성전문재학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낸뒤 해방후 본격적으로 활동, 전국적인명성을 얻고있던 선수.
서울에 설립된 대한학생육상경기연맹의 부위원장이던 그는 대구사범 체육과에 편입, 대구로 내려오면서 주위 대학선수들과 뜻을 합쳐 연맹을 만들었다.
이경철은 1946년 3·1절 기념마라톤, 8·15기념 시내일주 마라톤 등 당시지역에서 벌어진 마라톤대회 대부분을 휩쓴 대표적인 장거리주자.이명환 김집 김홍대 등도 장·단거리에서 손꼽을만큼 빠르기로 유명한 선수들이었으니 이들이 모인 연맹은 그야말로 지역육상 실력자들의 집결지였던 셈.
박만태씨는 "연맹에서 활동한 대부분이 20대중반으로 한창 왕성한 선수활동중이어서 정열이 대단했습니다. 실제 서울을 제외하고는 경북만큼 육상열이 높았던, 곳을 찾기 힘들었지요"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게다가 직전에 대구육상경기연맹이 설립, 김목탁을 비롯한 신대영 윤무순김봉구 이용학 등 1930년대 지역육상을 주도하던 선배들이 연맹을 지원한 것도 큰힘이 됐다.
연맹은 시내 각급 학교를 찾아다니며 육상에 재질있는 학생을 발굴, 지도하고 한편으로는 학교별 학년별 육상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첫 사업은 1947년6월 열린 제1회 경북도내 학교대항 육상경기대회.대구중학교 300m트랙에서 벌어진 이대회에는 운동장이 넘칠 정도로 많은학생들이 참가했다.
이 열기를 이어 10월말 학년별 대회가 열려 대구시내 남녀중학교 대다수가 참가, 일대성황을 이루면서 학교마다 육상을 하려는 학생들이 줄을 이었다.
이때 시상에 얽힌 얘기 한토막.
학년별 대회 종합우승학교에는 우승기가 주어지고 학년별 우승학교에는 우승컵이 주어지기로 예정돼 있었다.
당시 기술로 우승기는 제작이 손쉬웠으나 지금처럼 금속우승컵은 없어 주최측은 고민끝에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유기(놋쇠)로 그릇을 만들어 밑바닥에 구멍을 낸뒤 거기에 촛대를 꽂고 그밑에 중간크기의 유기그릇을 엎어받친 기상천외한 우승컵을 만들어 시상한것.
학교마다 일어난 육상붐을 타고 육상강자들이 속속 나타났고 중등교원양성소를 거치거나 선수출신의 교사들이 학교육상부를 맡아 지도교사로 자리를잡아갔다.
해방직후 최대의 라이벌은 대륜과 계성.
초반 강세를 보였던 대륜에는 단거리전국최강자 엄팔룡을 비롯한 이병우박문희 강신달 강성윤 등이 등장, 맥을 이었고 계성에도 백만종 석남수 이영달 이정혁 배희조 이희재 등이 대륜과 각축전을 벌였다.
이밖에 대구공고의 허남돌 송희원 등과 대구중의 김중명 손상옥 김창기등 강자들이 학교마다 포진, 지역육상은 양질면에서 모두 개화기를 맞았다.이경철씨는 "연맹은 주연습장으로 사대부고 운동장을 이용했는데 육상을배우기 위해 몰려드는 학생들로 장소가 비좁을 정도였습니다. 이때 배출된선수들이 전국제패의 선봉장격이었지요"라고 당시를 기억했다.지역경쟁을 통해 기량이 급성장한 선수들은 전국무대에서도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기 시작했다.
1947년 10월 열린 제28회 전국체육대회.
당시 조선올림픽대회로 불졌던 이 대회에 출전한 지역육상팀은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대륜중의 엄팔룡이 400m에서 52초3을 기록하며 우승했고 박만태가 110m허들에서, 경북릴레이팀이 1,600m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던 것.서울팀을 따를만한 지역이 없었던 당시 경북육상의 약진은 육상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해 벌어진 시도대항육상대회에서도 대륜의 엄팔룡과 경북릴레이팀은400m와 1,600m에서 각각 1위로 골인, 일시적인 강세가 아님을 입증했다.전국체육대회가 공식명칭이 된 첫해인 1948년 29회대회에서 경북팀은 또한번 육상계를 뒤흔들어놓았다.
전대회 400m에서 우승했던 엄팔룡이 급격한 성장을 보여 100m, 200m,400m 등 단거리를 석권했던 것.
이때 그의 기록은 당시로는 놀라운 100m 11초5, 200m 23초, 400m 50초9.경북릴레이팀은 1,600m에서 다시 우승,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고 여자부에서도 높이뛰기와 투포환에 출전한 경북여고의 최미자 박경조가 각각1m40cm, 9m57cm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김재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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