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살풀이

진료실 창 밖이 상인동 가스 폭발 지점인 탓으로 사고 이후 이 네거리의 변화를 매일 보고 있다.몇달 뒤면 지하철 공사장 복공판을 철거하고 이곳엔 일년전 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를 기억케하는 외부적 흔적은 사라질 것이다.

그동안 이 네거리에서 목격한 살풀이 굿만 해도 양손에 꼽을 정도다. 무당 박수의 징소리 가운데에 아이 엄마들은 이제는 안을 수 없는 아이 대신 붉고 흰 종이 꽃다발을 안고 두 팔을 떨고 있었다. 부끄럼 다 접어두고 거리에 선 어머니들의 못다한 애정과 박수의 징소리 가운데에 꽃잎은육화되어 아이의 목소리로 살아나고, 어머니들은 이승에 차마 못할 이별을 저승길에 이루고 있었다.

그 건널목을 지나 문구점에 볼펜을 사러 들른다. 좀 나은 걸 쓰려고 이것 저것 고르다보면 온통일제다. 애써서 고르지 않으면 국산이 손에 안 잡힌다. 일제라고 쓰인걸 피하고 비교적 낫다 싶은걸 골라와서 쓰다보니 한 귀퉁이에 일제라고 쓰여 있기도 하다. 글을 익히는 어린 나이에 쓰는학용품에서부터 부실한 국산품은 우리 아이들의 맘을 상해 놓고 있다.

언제부터 부실이 만연하였는가? 오래된 서원이나 사찰을 찾아 보면 그 정교한 짜임새가 자연과어우러진 가운데 어디 하나 허점이 없다. 석굴암과 청자 백자와 고문헌의 정확, 정묘함. 그냥 기계적인 정교함이 아니라 혼이 깃든 예술이다. 이 전통은 오늘날 우리곁 어디쯤을 흐르고 있을까?그 전통의 단절이 상인동 참사를 일으킨 총체적 부실의 원인이라면 이 큰 희생을 모두 함께 부끄러워하며 저 어머니들의 살풀이에 참례하는 심정으로 되살려야겠다. 또한 침략을 통해 이 전통의단절에 큰 원인 제공을 하기도 한 일본이 만든 물건들을 쓰게될 때에는 통렬한 경각심을 가져야할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 최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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