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굿판-정채란의 지화

동해안 별신굿패들에게 즐거운 시간이 있다. 강신무와는 달리 세습무는 굿판 그 자체가 흥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이들에게 더없이 즐거운 시간은 바로 '꽃일'할 때. 무대장식용 지화(紙花)만들때다.

백지와 오색지를 예리한 칼날로 오리고 썰며 이리저리 접붙여 탄생하는 꽃들은 하나같이 조화로운 모습이다. 어떻게 끝자락을 들고 휘 저어버리면 그 자리에는 치렁치렁 주름잡힌 넝쿨모양이되고 꽃대에 그대로 꽂으면 비록 조화일망정 그 꽃에 저절로 두손이 모아져 공손히 절하고 하다못해 목례나마 드리게 된다.

정채란씨(59.여). 지화만들기는 신기에 가깝다. 사물로 한창 주가를 올리는 김정희의 어머니. 김석출의 제수씨다. 무가에서 태어나 김석출의 동생 김재출에게 시집온후 동해안 별신굿패에 어울리면서 그의 지화솜씨는 가히 일가를 이루게 된다.

"요즘은 종이가 지질도 좋고 다양해 만들기가 한결 쉽지. 처음 아버지로부터 배울때는 한지를 오리기도 어렵고 색깔이나 모양내기가 왜 그리 안되던지…"

어린 시절 무가의 어른들이 만들던 산함박이나 불도화, 살재비, 옥사리꽃등은 정말 어렵다는 그는요즘은 그런 꽃을 필요로 하는 굿판이 없어 좀체 구경하기조차 힘들다고 한다.아버지로부터 연화치는 법을 배우고 그 뒤로 동해안별신굿패에 어울리면서 만든 꽃만 해도 큰 꽃동산을 이루고도 남을 만큼이라는 그는 "연화봉 꽃잎만 2백~3백개 되는 큰 꽃도 만들어 보았다"며 그 시절이 아쉬운듯 눈저리를 아래로 내려 놓는다.

꽃일 하는 것이 즐겁다고 했는데 왜 일까? 굿판에 사용하는 꽃을 만들기 위해 굿 하루 전날 온식구들이 굿할 장소에서 만난다. 이때 지화를 만든다. 그래서 지화만드는 날 저녁에는 멀리 떨어져 있던 별신굿 식구들을 만날수 있고 그간에 밀렸던 이야기들을 나눈다.

"이때 이야기 꽃이 정말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이지. 꽃속에서 이야기 꽃을 피우니 무가의우정은 더 돈독해질 수 밖에…"

요즘은 연꽃이나 국화 작약등 10여가지가 고작이지만 한창 때는 스무가지도 넘었다고 한다. 지난주 구룡포 동부초등학교 담벼락과 이웃한 용당에서 열린 3년만의 별신굿판에서 만난 그는 홀쭉한꽃대에 풍만하게 너불거리는 꽃실 하나를 만지작거리며 지난날 꽃속에서 신명난 일들의 회상에젖는 모습이 예사롭지가 않다.

〈金埰漢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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