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의 그늘" 내 친지 가운데 '유'를 '우'로 '야'는 '아'로 발음하는 분이 계신다. 몇사람이 모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중에 한 사람이 그 친지에게 '골프같은 거 치세요?'하고 묻자 그는 고개를 가볍게가로 젓고는 '그게 우행은 우행이야'라고 덧붙였다. 나는 꼭 골프가 우행(愚行)이라고 여기지는않지만 만일 그것이 유행이라면 내 친지는 발음기능의 한계로서 오히려 더 사무친 진실을 말해준셈이라고 생각한다.
◈규격화된 삶에 거부감
나는 유행을 싫어한다. 유행을 따르는동안 나를 잃어버리고 있는 강박을 떨쳐버리지 못해서다. 총각시절 우연한 기회에 결혼한 남자 열명중 아홉이 롤렉스 시계에 보석 금반지를 끼고 있는 손을보고나서 나는 처음으로 유행의 우행성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저렇게 규격화된 유행에 빈틈없이 따르는 저 사람들의 부인은 또 저렇게 규격화된 상품같은 여자들은 아닐까 궁금했던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할 때 아내와 싸우다시피 혼수로서의 반지와 시계를 거부했다. 예식장예식절차야 나로서 어쩔 수 없는 것이지만 혼수쯤은 능히 내 의지로서 저항할 수 있는 부분이었으니까. 나는 이렇게 가축떼거리처럼 누가 하면 우르르 따라하는 유행이 정말 한없이 어리석은짓거리처럼 생각되었고 그것에 저항하는 것만큼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결국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것 같다. 하나는 유행을 만드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유행을 따르는 사람이다. 우선 유행을 만드는 사람들은 실제로는 하나같이 유행을 몹시 싫어하는 사람, 유행을 못참아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개 이토록 혐오하는 유행자체에 대해 저항을 시도하는 삐딱한 사람이고 뭔가 도전적이고 반항적인 열정을 지니면서도 다소 장난기 넘치는 성질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은 무엇보다 자신을 중시하며 자기자신에 대한 신뢰감을 갖는 사람들이다.반면에 유행을 따르는 사람들은 대개 양순하고 부드러우며 모나지 않은 원만한 인격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은 허영심이 많은만큼 또 자기를 불신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앞서가나 뒤처지는 것에 몹시 신경쓰고 낯선 환경에 혼자 처해지는 것을 몹시 불안해 하고 고통스러워 한다.
◈나의 길은 어디에 있나
그런데 문제는 유행에로 이끄는 것이 당사자의 욕망이 아니라 '타자의 욕망'이라는 데에 있다. 가령 한달 봉급을 고스란히 바쳐서 무스탕 옷을 사입는 가난한 여공의 마음은 조작되고 주입된 타자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즉 그것은 이익 극대화에 혈안이 된 무스탕 회사의 욕망이고 소비를 부추기는 산업자본가의 욕망이며 번영을 과장하려는 정치지도자의 욕망이다. 이 타자의 욕망들을 '나의 욕망'으로 위장시켜 저 여공의 심중 깊은 곳으로 주입시켜놓는 일은 물론 매스컴의 몫이다.우리는 경험법칙으로 알고 있다, TV에서 선전하는 저 아름다운 CF 모델의 미소로부터 벗어나고그 강요로부터 우리의 지갑을 지켜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총을 든 권력자로부터 벗어나는일이 그것보다 차라리 쉽다. 어쨌든 사정거리로부터 벗어나기만 하면 되니까. 그러나 현란한 컬러, 우아한 미소, 부드러운 음성으로 다가오는 저 집요한 협박으로부터 우리를 지켜낸다는 것은거의 불가능에 가까우리만큼 지난한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스탕을 입어야 하고 자동차를 사야하며 골프를 쳐야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삶은 어디에 있는가. 허름한 토파 하나 걸치고 비를 맞으며 걷더라도 내가 걸어가야할 나의 길은.
〈부산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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