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단종(端宗)의 애사가 서려있는 비운의 땅, 영월(永越).
소백산맥의 북쪽 자락을 안고 제천에서 출발한 태백선 철도가 영월을 지나 태백시까지 내닫는다.골골이 물들이 모여 이뤄낸 천과 강이 키높은 소백산맥을 적시며 단양으로, 남한강으로 흘러드는곳. 청령포에 한을 묻고 험한 땅을 일구며 살아온 충절의 고장 영월, 영월사람들. 피눈물로 걸어내려온 7백리길 유배의 땅이었기에 영월의 하늘과 물은 서럽도록 푸르고 맑다.
단종의 뼈가 묻힌 장릉(莊陵) 5백년의 통한이 영월땅을 지켜왔지만 요즘 이 곳 사람들은 동강때문에 또다시 에인 가슴을 저미며 살아간다. 동강 70리 푸른물길이 댐건설로 더이상 그 아름다운 자태를 간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산은 설악이요 강은 동강이라할만큼 산자수명한 강. 그리 급한 물길도 아니기에 정선, 평창을 더듬어 수십리 깎아지른 절벽을 휘돌아 굽이굽이 내쳐 남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강이다. 예나 지금이나 그 물길은 영월사람들의 얼굴처럼 투명하지만 앞날은 그렇지못하다.
지난해 6월 개발촉진지구로 지정된 동강에는 한강 홍수조절과 수도권 용수공급확대를 목적으로저수량 7억t규모의 거대한 영월댐이 들어선다. 수자원공사의 댐건설계획은 올해부터 2001년까지.수몰예상가구수만도 3개군에 모두 5백40여호나 된다. 벌써 골재채취를 위한 포클레인의 굉음이 계곡을 뒤흔들고 있다. 수몰예정지구인 상류쪽 정선군, 평창군은 물론 영월 덕천리, 문산리, 거운리도 머잖아 물에 잠긴다. 이 때문에 동강변사람들은 지금 속이 탄다. 환경단체들과 함께 '동강지키기'구호를 질러내보지만 어느것하나 속시원한게 없다.
녹지자연도 8등급이상인 동강은 우리나라에서 생태계가 가장 양호한 자연하천중 하나다. 현재 천연기념물 수달, 어름치등이 광범위하게 분포해있다. 1백여종의 어족과 호사비오리, 까막딱따구리,청둥오리등 새들의 안식처다. 더욱이 영구보존 천연기념물인 백룡동굴등 30여개의 석회암동굴이분포해 있다. 하지만 댐이 건설되면 물의 정체로 수질이 급속히 악화, 생태계의 완전한 파괴가 우려되고 있다. 사람도 사람이지만 생태계의 보고로 일컬어질만큼 평온한 보금자리가 되어준 동강변의 온갖 동식물도 이제 제 집을 잃을 판이다.
영월읍에서 거운리까지는 동강을 끼고 10km남짓. 석양무렵 맑은 물속에 노니는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비단처럼 곱다하여 붙여진 동강 최고의 절경지 '어라연'이 코앞이다. 댐건설예정지는 어라연에서 하류쪽으로 불과 10분거리인 만지동. 모두 6가구가 만지나루터를 중심으로 띄엄띄엄 자리잡고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운명을 미리 감지했음인지 지명조차 '만지'(滿池)다. 몇년내 이곳에 댐이 막아서면 억겁 세월동안 물살에 깎여 섬처럼 떠있는 비경 어라연 삼선암도 물속에 잠겨 수궁으로 변한다.
만지사람들은 스스로 '6반사람들'이라고 부른다. 행정단위로 6반이기도 하지만 모두 여섯가구라그런 모양이다. 십수년전만해도 만지에는 떼꾼들을 상대로 뗏상밥을 해주던 술집이 있었다. 그 옛날 술집이었음직한 어라연부근 조그만 가게 '어라연상회'. 도회지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금줄이걸려있다. 아들낳은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주인 이모씨(39). 그동안 고기잡이와 약초재배로생계를 꾸려오다 5년전쯤 가게를 열었다는 그는 보상외에 달리 방도가 없어 6반사람들은 대체로댐건설에 찬성하는 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씨는 "댐이 들어서고 수몰민이 되더라도 이 근처에서 고기나 잡고 살아갈 생각"이라고 털어놓는다.
반면 댐건설지 밑쪽 50여가구가 한식구처럼 의지하고 살아가는 거운리 사람들은 댐건설이 못내불만이다. 정월대보름날 동네사람들 모두 마당넓은 집에 모여 한바탕 윷판을 벌이지만 도무지 신명이 나지 않는다.
떼꾼으로 한세월을 보냈다는 주민 홍원도씨(65)는 "수몰위험지구가 아니라 보상받을 일도 없지만댐이 들어서면 당장 냉해등 피해만 고스란히 입지않을까 주민들 모두가 걱정"이라고 한다."누구도 뒤돌아보지않는 산골오지를 조상대대로 지켜왔어요. 눈을 감아도 밟히는 고향산천을 하루아침에 잃는다는데 가슴이 온전하겠어요…. 댐이 들어서면 서울사람들은 기분좋게 물을 쓰겠지만그 물은 터전을 잃은 이곳 사람들의 눈물입니다".
만지, 진탄, 소사나루터…. 뗏목에 몸을 싣고 살아가던 떼꾼들의 애환과 구성진 뗏목노래가 남아있는 나루터의 고장, 동강. 옛날 서울로 실어나르던 골뗏목(골짜기를 따라 움직이는 뗏목)의 추억이깃든 이곳에는 이제 짙은 안개만이 앞날을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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