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재정경제원은 '열린 시장경제로 가기 위한 국가과제'를 김영삼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세부실천계획을 3개월안에 마련, 당장 실행에 옮기거나 늦어도 2~3년내에 국가운영의 새로운 틀을짜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재의 국가운영 방식으로는 새로운 세기에 대비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때는 연초 한보부도를 시작으로 내로라 하는 대기업이 줄줄이 무너지고 금융기관의 신용도가 떨어지면서 해외차입선이 끊기고 환율이 오르기 시작하는 등 멕시코식 외환위기의 가능성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21세기가 아니라 당장을 걱정해야 할 때였던 것이다.그로부터 불과 6개월 뒤인 11월23일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신경제'라는 화려한 수사로 출발한 김영삼정부의 경제운영은 이같은 현실감각의 부재와 일과성구호의 연속이었다.
신경제는 수치상으로는 평균점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신경제 5개년계획이 제시한 연도별 경제성장률 목표치는 93년 6.0%%, 94년 7.1%%, 95년 7.2%%, 96년 6.9%%, 97년 7.0%%. 실제 성과는93년 5.8%%, 94년 8.6%%, 95년 8.9%%, 96년 6.9%%, 97년 6.0%%(추정)로 첫해인 93년과 마지막해인 97년을 제외한 나머지 3개년은 모두 목표치를 초과달성했다.
그러나 이같은 성과는 94년과 95년사이 세계적 호황을 누리던 반도체, 석유화학 등 이른바 전략산업의 양적투자 증가에 주로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세계적인 호황이란 것도 투기적 수요가 몰고온 반짝경기에 불과했다. 96년부터 반도체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우리경제가 퇴행의 길로 접어들기시작한 것이 이를 잘 증명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같은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대신 눈에 보이는 성과에 기대 '세계화구상','21세기 장기구상', '경쟁력 10%% 높이기'등 신경제 만큼이나 화려한 이름의 굵직한 대책과 청사진들을 연달아 쏟아내면서 국민들에게 우리도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도취감을 심어주는데 열중했다.
그 절정은 96년말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입. 경제운영의 하드웨어(제도)나 소프트웨어(국민들의 의식구조)가 아직은 OECD국가 수준에 근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시기상조라는 많은 지적들이있었으나 정부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경제는 국민들의 과소비와 기업의 과잉.중복투자, 관치금융의 지속과 금융산업의 부실화 등으로 골병이 들어가고 있었다. 96년말 경상수지 적자가 사상최대인 2백37억달러를 기록하면서 우리경제가 앓고 있던 속병이 겉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경상수지 적자폭의 확대로 위기를 감지한 정부는 노동법 개정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려 했지만날치기통과라는 변칙에 의지함으로써 한가닥 남은 기회마저 날려 버렸다. 그 뒤 한보부도가 터졌고 이어 기아사태가 겹치면서 우리경제는 불과 반년만에 개도국의 모범생에서 본받지 말아야 할표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신경제 5년의 결과는 참담하다. 95년 개막된 국민소득 1만달러는 불과 3년이 못돼 6천달러대로 주저앉을 전망이고 외채는 1천5백44억달러가 됐다. 또 외환위기이후 기업들의 연이은 도산으로 재도약을 위한 성장잠재력마저 잠식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경제 5년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우리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도록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했다는 사실 뿐일 것이다.
〈鄭敬勳기자〉
댓글 많은 뉴스
[단독] "김정숙 소환 왜 안 했나" 묻자... 경찰의 답은
"악수도 안 하겠다"던 정청래, 국힘 전대에 '축하난' 눈길
한미 정상회담 국방비 증액 효과, 'TK신공항' 국가 재정 사업되나
李대통령 지지율 2주 만에 8%p 하락…'특별사면' 부정평가 54%
한문희 코레일 사장, 청도 열차사고 책임지고 사의 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