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칼럼 세풍-환란-지식인-민초

최근의 나라꼴이 꼭 주인없는 나룻배 같다는 느낌이 든다.

매일 수천명이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수십만명이 단숨에 알거지가 되는 이런 난리통에 누구한사람 내탓이라 책임지고 나서는 이조차 없으니 IMF 한파앞에 떨고 있는 이 백성이 딱하기만 하다.

명색 주권국가가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들이고 백성들의 잘못에 대해 체벌을 가할 수있는 권능, 다시 말해 통치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해줄 수 있는' 힘이 전제돼야 한다.

날벼락맞은 백성들

그런데도 정부는 우리국민을 보호하기는 커녕 국가를 파국에 몰아넣은 재난을 초래한 책임조차 팽개친 채 고통분담만 강요하는 형편이니 이 나라의 지도계층은 영광은 누리되 책임은지지않는 그런 사람들인지 모를 일이다.

물론 환란의 원인이 규명됐고 검찰이 당시 경제책임자들을 기소함으로써 사건은 종결단계지만 그것으로 그뿐, 진정 누가 이런 환란을 초래했는지 헷갈리기는 마찬가지다.실제로 YS는 "나는 경제는 모른다"는 말로 빠져나갔고 강(姜), 김(金) 두 경제책임자는 "나도 할말이 있다"고 항변이 만만치 않으니 그렇다면 이 환란은 이 땅위에 살고있는 누구의책임도 아니라 '천벌'이란 말인가.

내가 여기서 새삼스럽게 누구탓인지 분명하게 따지고 넘어가자는 것은 내탓 네탓을 가려 분풀이나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환란의 실체를 규명, 그 원인을 제거하고 이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야 할는지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서라도 짚고 넘어가야 겠기에 하는 소리다. 환란의 날벼락을 맞은백성들에게 정리해고와 감봉에다 1백조원이 훨씬 넘는 구조조정 비용까지 3중고를 요구하기에 앞서 누가 이러이러하게 일을 저질렀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게끔 철저히 발본색원 했으니 믿고 구국(救國)의 고통분담 대열에 동참해 주십시오 라고 호소함으로써 국민적공감대를 형성하는게 순리라는 생각에서 하는 말이다. 정말 백성된 입장에선 환란에 대해상당한 책임을 져야 할 정치권이 아직도 자기 개혁에는 등을 돌린채 쓰잘데 없는 정쟁이나벌이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고통분담의 멍에를 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을 것이 분명하다.한심한 전국민책임론

나라가 제대로 돌아가려면 지식계층의 전문적인 식견만 가지고는 불충분하다. 오히려 그보다 사회를 지키려는 신념과 동족을 사랑하는 열정, 불의를 미워하는 정의감이 저변에 깔려있어야 그 나라는 활기차게 돌아간다.

그렇다면 이 미증유의 대란 앞에 남의 탓이나 하고 제 앞 챙기기에 급급한 우리의 모습을정말 다시한번 되돌아 봐야할 것만 같다.

일부 지식인들 사이에는 '지금의 환란은 우리모두의 책임'이라며 어물쩍 넘기려는 경향마저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말이 안되는 소리다. 하루하루 살아나가기에 급급한 민초들이 어떻게환란의 책임을 나눠 맡아야 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간다.

어찌 보면 이 말은 어떻게든 과거책임은 물론 미래의 부담까지도 국민 대중에게 떠넘기려는지식인들의 자기변명에 불과하다고 봐야한다.

정권 영합 수혜속 안주

이땅의 상당수 지식인들은 어느시대 어떤 정권에도 영합, 사회를 주도하고 거품경제의 혜택을 누리며 안주해왔다. 결국 지금의 이 환란도 넓게보면 행동하는 양심이 되기보다 자신의영달을 위해 침묵을 기꺼이 선택한 지식인들이 불러들인 것으로 볼 수 있을 것만 같다.우리는 지금 혹독한 고난기에 처해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환란의 책임자를 문책하는 것은 그리 중요치 않다. 그보다는 그 원인을 규명해서 의식을 개혁하고 21세기를 열어나갈 새로운 비전으로 설계하는 것이 더욱 급하다.

이것이 바로 우리 지식인들이 거듭 다시 태어나서 자기성찰을 하고 사회에 동참해야 할 피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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