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정말 다 포기하고 싶어요. 공무원 시험(9급)도 여러번 떨어졌고, 사무실 경리라도 하고 싶지만 대졸이라고 퇴짜맞기 일쑤예요. 이 넓은 세상천지에 내가 일할 곳은 단 한군데도 없어요. 언제까지 이럴지 정말 지쳤어요"
지난해 2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디딘 ㅇ씨(25·대구시 중구 남산3동)는 그날 벌어 그날 쓰는 아르바이트로 아름다운 청춘을 저당잡힌 채 우울한 20대를 보내고 있다.성주에 계시는 부모님들은 '목숨 걸고' 취직하기를 바라는 딸이 거듭 직장갖기에 실패하자 "덧정없다. 시집이나 가라"지만 요즘이 어떤 세상인가.
못생긴 건 참아줘도 일자리 없는 건 못참아준다고 하지 않는가.
가히 '순례'라고 해야할 ㅇ씨의 취업과의 전쟁과 같은 하루는 여름 아침 동이틀 무렵부터 시작돼,하루해가 꼴딱 넘어가는 자정이나 돼야 끝이 나는데 취업의 기대치를 스스로 깎아내려 이제는 한달에 50만~60만원을 벌더라도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이면 언제든 입사태세를갖추고 있다.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친 ㅇ씨는 집 인근에 있는 슈퍼로 아르바이트를 나간다. 생필품을 정리하고,손님들의 쇼핑을 돕고… 몸이 고단하더라도 슈퍼를 찾는 고객들이 많이 찾아만 주면 좋겠건만IMF 이후 슈퍼 입점객은 피부에 와닿을 만큼 줄어들었다. 오후2시까지 줄곧 서서 판매를 돕다보면 아무리 젊다지만 다리도 붓고 피곤하다. 이렇게 해서 한달 버는 수입이 40만원. 아무리 절약해도 한달에 30만원은 들어가는 생활비를 겨우 댈 정도이다.
슈퍼에서 제공하는 점심을 먹고 간단하게 옷매무새를 고쳐 아는분이 운영하는 커튼집으로 간다.보통 오후 3시쯤 두번째 아르바이트처로 출근, 7~8시까지 일을 하지만 늦을 때는 밤 9시가 넘어야 퇴근길에 오른다. 그래서 받는 돈이 25만원. 공무원 시험을 준비중인 ㅇ씨가 낼 학원비랑,교재비를 충당하면 주머니는 텅텅 빈다.
밤늦게 퇴근한 ㅇ씨는 공무원으로 다시 태어나기 위한 현대판 형설지공을 들인다. 백수생활 1년6개월만에 9급 공무원 시험에만 벌써 서너번 응시했다. 9급 공무원 원서 접수 경쟁률은 보통 1백50대 1을 넘는다. 그러나 결시율이 높아서 시험 당일 경쟁률은 8, 90대 1로 떨어진다."보통 대학교 3~4학년부터 시험을 준비, 2, 3수생은 돼야 붙는다고 그래요. 하지만 거듭 낙방하고보니 정말 지쳐서 앞길이 막막해요. 아르바이트를 하긴 하지만 빨리 하루살이 신세를 벗어나 안정된 청춘을 꾸며가고 싶어요"
이씨는 한때 취직시험을 포기하고 발로 뛰어다니며 일자리 탐색에 나서기도 했다. 구멍가게 같은사무실의 경리직으로도 10번 이상 이력서를 넣어보았지만 서류 전형에서부터 '대졸'이라고 박대를 받았다. 고졸들의 영역으로 여겨지던 곳으로 취업 눈높이를 낮춰보았지만 부담스러운 대졸에는 곁눈도 주지 않았고, 정식 대졸 일자리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기'만큼 좁아진데다 어학 실력을 포함한 경쟁력마저 내세울게 없어서 한숨만 나온다.
밤늦은 시간, 피곤한 몸을 부러 곧추세우며 취업서적을 읽고 있는 ㅇ씨는 얼마전 대구인력은행에서 알려준, 산업복지를 전공한 인력을 뽑는다는 기업체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취직한 친구를 보면 얄미운 마음마저 들고 하루를 버티기가 정말 피곤해요"라는 ㅇ씨는 IMF가아무리 무섭다지만 새출발하는 젊은이들에게 최소한의 일자리마저 제공하지 않는 갑갑한 나날들이 장마비에 속시원히 씻겨갈 그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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