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화이트 칼라

날마다 신문 첫면을 장식하는 실직자 증가, 은행의 퇴출과 합병, 인원 감축등 우울한 소식때문에 이제는 신문을 보기 전에 심호흡부터 먼저 해야할 정도로 모두들 민감해져 있다. 대부분의 우리 부모들은 자식의 직업이 화이트 칼라이기를 원해 왔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화이트 칼라의 꿈도 사라져가는 것 같다.

명동성당 앞에서 붉은 띠를 두르고 일자리를 돌려달라고 시위하는 화이트 칼라들의 모습과,남편을 직장이 아닌 시위 장소로 보내야하는 아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나 또한 남의 일같지 않아 하루를 불안하게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그들도 한 때는 남들이 말하는 안정된직장과 생활 속에서 앞 날의 꿈을 위해서 하루하루 평온하게 살았던 일상인들이 아닌가.내가 화이트 칼라의 아내가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의 일이다. 은행원을 남편으로 둔내가 해 오던 가사노동 중에서 제일 따분하고 귀찮아 했던 일은 남편의 와이셔츠를 다림질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단순한 일이 새삼 나의 생활에 무척이나 감사한 일이며,소중한 일상이 되었음을 발견한다. 아무런 대책없이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어버린 실직자들과, 화이트 칼라를 꿈꾸며 취업난에 시달려야 하는 대학졸업생 모두에게 이 여름이 얼마나지루한 날들이 될지 나는 생각해본다.

무더위로 나른한 오후, 구겨진 와이셔츠를 다림질하면서 우리 가정과 우리 이웃 모두가 이암울한 IMF 터널을 무사히 통과하기를 소망한다. 이 IMF라는 손님은 우리들이 그동안 자기의 손 안에 있는 작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기 위해 찾아온 불청객인지도 모른다. 오늘따라 남편의 흰 와이셔츠가 이 암울한 세상을 지켜나가는 성직자의제복처럼 보이는 것은 나만의 착시일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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