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대학개혁의 목표와 방향

대학개혁은 당위인가, 필연인가? 대학개혁의 목표와 방향은 무엇이며, 그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는가? 이에 대한 적절하거나 충분한 논의도 없이 대학은 지금 개혁의 격랑에 휩쓸리고있다. 고등교육법이 시행됨에 따라 신입생 입학전형의 모집단위가 학과에서 학부 또는 복수학과제로 바뀌게 되었고, 이에 대비하여 대학은 지금 수년 전부터 진행되어 오던 학부제 개편에 막바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구성원중 이해당사자인 교수와 학생들의 반발과 저항도만만치 않다. 대학에 따라서는 교수들과 대학본부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가 하면, 총학생회 간부들이 총장실을 점거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오늘날 우리가 개혁추진의 과잉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개혁의 결핍에 고민하는 것은 개혁의 목표와 방향설정이 명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역사의 산 맥박을 느낀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그리 쉬운 일이아니다.

대학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교육부와 그 실천적 수행을 담당하고 있는 일선 개별대학의 입장과 처지를 살펴보면 어느 한 쪽의 손을 전적으로 들어주는 것도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해서어느 한 쪽에 그 책임을 전적으로 묻는 것도 역시 불가능하다. 한국의 교육제도는 일제의잔재를 물려받아 묵은 틀을 크게 바꾸지 못한 채 반세기를 넘어서 버렸다. 급변하는 사회적수요에 부응하지 못하는 한 줄 세우기 교육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된다는 당위성을 부정할 자는 아무도 없다. 고액과외와 입시부정의 불법행위를 단절시켜야 한다는데 반대할 자도 없다. 교육시장 개방으로 외국의 유수한 대학이 이제 곧 몰려올 것이고, 대학 신입생 정원과 진학인구가 일대일이 되는 2002년도 박두하고 있다. 대학의 틀을 바꾸어야 한다는 당면과제를 안고 있는 교육부는 시간이 촉박하다. 일선 대학들 역시 이러한 절박성을 모르는것이 아니다. 그러나 연구의 터전인 전공학문영역의 존속이 위협받고, 강의 시간수가 급감하는 교수들과 폐과의 위기를 예견하는 학생들의 강한 반발과 저항에 대학의 총장과 보직자들은 난감할 수밖에 없다.

학부제는 과연 대학개혁의 인식근거이며, 대학개혁은 또한 학부제의 존재근거일 수 있는가?학부제는 대학개혁의 중심점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대학개혁의 최종적 목표가 아니라,대학개혁의 방법중 하나에 불과하다. 대학개혁의 최종목표는 보다 수준 높은 연구와 대학다운 교육을 실질적으로 해보자는 데 있다. 세계 무대에서 국제적 명문대학과 경쟁할 수 있는대학을 만들어 보자는 데 있다. 그것은 개별대학을 특성화하면 저절로 전국대학은 다양화될것이며, 그러했을 때 모든 대학의 경쟁력은 제고될 것이라는 방법적 전제 위에서 가능해진다. 그런데 전국 각 대학에서 추진하고 있는 학부제가 만약 또 하나의 획일화를 불러온다면이러한 대학개혁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 자명하다. 미국의 학부제는 미국적 대학풍토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성되어 발전한 것이다. 다른 토양에서 만들어진 제도와 패러다임을 우리 땅에 그대로 이식하였을 때 그것이 온전히 정착하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아직은 늦지않았다. 제도와 패러다임의 다양한 변용을 통한 개별대학 나름대로의 가장 적합한 개혁방법을 찾아야 한다. 교육부는 이미 대학에 자율성을 충분히 부여하고 있다. 우리는 스스로 이면에 있는 독선과 맹목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 제도의 개혁만으로 대학의 교육개혁이완수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산이다. 문제는 제도의 수용이며 운용이다. 제도의 적절한 수용과 효율적 운용에는 의식의 전환과 정서적 수용여건의 성숙이 토대가 되어야 함이필수적이다. 물론 국립대학과 사립대학의 입장은 다를 수 있다. 자율성의 보장이 보다 크게확보된 사립의 개별대학들은 이제 독자적으로 살아남을 길을 개성적으로 찾아야 한다. 개별대학이 죽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살려고 하는 길을 누가 막을 수 있는가. 누구도 타인의 생존을 제한할 권리를 가진 자는 없다.

인위적.강제적 학부제로 몰아갈 것이 아니라 개별 학과마다 학문의 영역마다 대국적 입장에서 제각기 생존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인문학과 기초학에 대한 배려와 보장이 선행되어야한다. 양적 팽창의 시대는 이미 막을 내렸다. 기민하게 움직일 수 있는 작은 대학, 인간성교육을 바탕으로 한 기술교육 즉, 내실 위주의 실질적인 교육을 실시하는 대학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구성원간의, 영역별 당사자간의 심도 있고도 충분한 논의가 요청된다. 예상되는문제점 모두를 짚어보고 사안별 대책을 점검한 후 집단별 의사결정을 도출하여야 한다. 그리고 일단 도출된 의사결정에는 개인적 이해관계를 떠나 구성원 모두가 승복하여야 한다.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을 따라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의 원리이다. 아무리 현란하고 장중한 명분을 걸치더라도 그것이 민주적이지 않은 개혁이면서 성공했던 사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개혁도 민주주의도 모두가 살자는 것이 아니겠는가.

〈경산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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