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혜린·임방울 일대기 출간

일세를 풍미한 두인물의 궤적 불꽃같은 삶을 산 두 인물의 평전이 나왔다. 서른 한 살에 요절한 페미니스트 전혜린(1934-1965)과 민중의 아픔을 위로한 판소리 가객 임방울(1904-1961).

'삼십세! 무서운 나이! 끔찍한 시간의 축적이다. 어리석음과 광년(狂年)의 금자탑이다…'죽음을 상정한 듯한 말을 남기고 요절한 페미니스트이자 패시미스트(염세주의자)인 전혜린. 사후33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안일한 부르주아적 질서에 도전하는 아웃사이더로 각인돼 있다.

자유기고가 이덕희씨가 쓴 평전 '전혜린'(작가정신 펴냄)은 지난 1982년 이씨가 '아! 전혜린'이란제목으로 출간했던 책을 16년만에 재출간한 것.

전혜린은 끊임없이 고독과 싸운 '광기'의 여인이었다. 딸에게도 "죽이고 싶다"는 적대감을 서슴없이 표현하며 스스로 자유롭고 싶어했던, 비범한 정신력과 날카로운 지성의 소유자였다. 서울대 법대 입학-독일 유학-프란츠 그릴파르처(오스트리아 극작가)에 심취-독신주의 파기-어머니가 됨-합의 이혼, 그리고 죽음. 말그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산 그는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하인리히 뵐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를 번역하는등 왕성하게 활동했으나 65년 1월 10일 수면제 과다복용으로 생을 마감했다.

한길사에서 '위대한 한국인' 시리즈 7번째로 나온 '명창 임방울'(천이두 지음)은 가장 암울했던시기 판소리로 세인들의 가슴을 어루만졌던 '아름다운 광대' 임방울의 일대기를 그렸다.임방울은 치욕적인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기 1년전인 1904년 4월 25일 전남 광산군에서 태어났다. 가족들은 혼자서도 방울 방울 잘 논다 해 그를 방울이라 불렀다. 이 '방울(芳蔚)'이란 애칭이승근(承根)이란 본명을 제쳐놓고 천하를 떨치는 예명으로 굳어지리라는 것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다.

천부적인 '광대끼'와 '성음'으로 '국창(國唱)'으로 추앙받았지만 그의 삶은 고단했다. 판소리의 가장 어둡고 쓰라린 기간인 40~50년대를 거치면서 선배 가객들처럼 조선시대의 직함하나 차지하지못했고, 후배 가객들처럼 인간문화재로 사회적 보장도 받지 못했다. 민족 또한 암울한 시기였다.그의 판소리에 유달리 한스런 가락이 두드러진 것은 이 때문이다. 10살때 처마밑에서 '쑥대머리'를 구성지게 불러 아낙들의 울음보를 터뜨리게 한 것처럼 그에겐 천부적인 '한(恨)'이 '재주' 위에 더 얹혀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4백4쪽. 1만원.

〈金重基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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