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춘문예 준비작업-소설가 박희섭
한 해의 끝머리에 서면 영원한 청년의 그리움처럼 찾아드는 신춘문예.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면누구나 한번쯤 남몰래 일방적 연정을 품어보는 꿈의 제전(祭典).
늘 이맘때만 되면 난 내가 작가라는 사실도 잊은 채 다시 한번 도전의식에 들뜨기 시작한다. 그것은 신춘문예에 내 젊은 날의 날카롭고도 치열한, 고통스럽고도 그리운 열망이 고스란히 숨어있기 때문이다.
허나 돌아보면 그 열망의 높이 만큼이나 좌절의 고통은 얼마나 깊고 또 처참하기까지 하였던가.무수한 날을 뜬눈으로 지새며 쓴 작품을 꼭꼭 포장하여 우체국에 부치고 돌아올 때의 그 황홀감이라니. 하지만 장밋빛 기대는 발표날이 가까워지면서 차츰 조바심으로 바뀌고, 낙선을 알았을 때의 기분은 가히 절망을 넘어서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한 회의에까지 이르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시일이 지나면서 무턱댄 열정에 가리웠던 눈이 밝아지면서 자신의 작품이얼마나 한심한 것이었는지를 깨닫는다. 어디서 본 듯한 진부한 소재, 욕심과 서투름으로 치장된유치하고 통속적인 문장과 엉성한 구성, 내적 깊이를 얻지 못한 주제의식 등의 자신의 작품이 왜낙선의 고비를 마셨는지 알게 해준다.
그리하여 문학도의 길을 포기할까 고려한다. 그러나 그건 섣부른 체념일 뿐이자. 자신의 작품에서한계를 본다는 건 이미 문학에 대한 안목이 한 단계 높아졌음을 뜻하며 체념을 할 수 있다는 건욕심을 버릴 수 있는 정신적 자세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 실은 그때부터가 도전을 할 자격을 가진 셈이다.
또다시 그리움으로, 욕심을 버리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글을 포기하듯 툭 던지고 돌아서는 순간,비로소 그토록 고대하던 당선의 영광이 찾아오는 것이다. 작가라는 고통스런 이름으로.
■심사위원은 무엇을 보나-시인 김용락
해마다 찬 바람이 불면 문학청년들을 불면과 고뇌의 늪으로 끌고 가는게 일간지 신춘문예이다.근래에는 신춘문예 무용론이 여론화되기도 하고, 일부 병폐도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시험하고 당당히 겨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신춘문예는 여전히 매력이 있다.몇차례 일간지 신춘문예 예심과 대학문학상 심사를 본 경험을 중심으로 신춘문예에 시를 응모할경우 유의해야 할 점을 말하겠다.
요즘은 대부분 원고지보다는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한다. 원고지에 쓸 경우 분량도 많아지고 의미파악도 상대적으로 명료하지 않다. 이에 비해 워드프로세서를 사용하면 깨끗해서 읽기 쉽고, 의미파악도 쉽다. 원고지 사용보다는 흰 백지에 워드를 사용하든지 손으로 또박 또박 쓴 것을 더 선호한다.
띄어쓰기 맞춤법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 글쓰는 이들에게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다. 띄어쓰기나 맞춤범이 틀린 글은 내용이 훌륭해도(이런 경우는 대부분 내용도 볼품 없다) 읽기 싫어진다.특히 신경 써야할 사항이다.
시의 제재를 일상생활의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으로 취하는게 좋다. 불필요한 허장성세나 추상적인 것은 뽑는 이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주변의 사물들을 욕심부리지 않고 따뜻한 시각으로 그리는게 좋다.
사물을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형상화해야 한다. 지나친 실험의식이나 개념적 언어구사보다는 깊은사유를 거친 참신한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시는 기본적으로 인생에 대한 비유라는 말도 있듯이 시를 통해 서민들의 일상적인 삶의원리나 인생의 비의를 드러내야 한다.
예심의 경우 수천편의 응모작 가운데 겨우 1% 정도인 수십편만 그것도 짧은 시간에 골라야 하는기술적인 제약 때문에 시의 첫머리에 에피그램(풍자)성 수사나 의표를 찌르는 참신한 비유를 배치하는게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신춘문예 틀을 의식하지 말고 자기 방식대로 자신있게 써야 한다. 문학이란 결국 자기 방식으로 세상을 보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심사위원은 무엇을 보나-소설가 김원우
'매일신춘문예'에 대한 응모자들의 열기가 어느 때보다 뜨겁다. 신인 등용문을 통과하기위해 초조하게 준비에 여념이 없을 예비 문인들을 위해 과거 당선자들의 체험기와 함께 글쓰기에 있어서중점을 둬야 할 점 등을 기성작가들로부터 들어본다. 소설가 박희섭씨(87년 당선)와 시인 송재학씨(77년)가 당선 체험기를, 소설가 김원우씨와 시인 김용락씨가 신춘문예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한다.
〈편집자주〉
소설쓰기는 언어로 집짓기이다. 삐걱거리는 집에서는 누구라도 불안해서 살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무랄데 없이 지은 집이 드물다. 언어의 조립공사가 허술하기 때문에 그렇다.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다. 소설쓰기에서는 진리다. 아무리 기발한 소재라도 언어 조탁력이 따라가지 못하면 실감없는 '이바구' 한자락을 풀어넣은 것이 되고 만다. 말썽많은 오늘의 우리 현실을 직시하는 작가의 주제의식이 아무리 도도하다 할지라도 그 시각은 결국언어의 조작술에 기댈 수밖에 없다.
비문(非文)이나 오문(誤文)이 한 문장이라도 나오면 당선권의 심사대상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앞뒤 문장의 연결이 부자연스러운 이른바 콘텍스트의 버성김이 드러나면 작가의 세계관 및 전인격조차 미심쩍어진다.
소설에서 대화의 기능은 여러가지고 그것마다 하나같이 중요하지만 예컨대 "술이나 한잔할까?"같은 상투성을 함부로 남용하면 함량 미달의 작품으로 낙인찍힌다. 주요인물의 개성화에 실패한명명백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서술 전략은 참신할수록, 도전적일수록 좋은 점수를 딸 확률이 높다. 소설의 '이야기' 구조가 근본적으로 내용보다는 형식에 의존하는 유기체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형식의 기초적인 토대는 순도 높은 언어 교직력(交織力)이다.
언어로 옷감을 촘촘하게 짤수 있는 사람만이 '매일신춘문예'의 소설부문 당선자가 될 수 있다.
■나의 신춘문예 준비작업-시인 송재학
스무살 문학청년에게 신춘문예만큼 더 붉은 설레임이 어디 있을까. 송창식의 '고래사냥'을 야전전축으로 들으며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읽은 그때는 그러했다.
문학청년의 의미가 병이거나 열정의 다른 말인 70년대 내 청춘은 시인에 대한 선망, 신춘문예에대한 갈증으로 목마름이 자주 왔다.
곧 굉장한 시인이 탄생하리라는 예감이 온몸을 전율케한다. 그리하여 신춘문예는 젊음이 통과하려는 진지하고 장엄한 진검승부 같은 의식을 준비하는 듯 했다. 지금처럼 신춘문예당선시집이 없기에, 너덜너덜해진 필사본 신춘문예당선시들은 중요한 텍스트였다.
예과시절 등록금이 없어서 휴학했던 그해. 남들에게네는 시를 쓰기 위해 휴학했다고 변명했던 그해 1976년, 나는 필사본 신춘문예당선지 30편을 옮겨 적으면서 한 번 베꼈고, 의미를 곱씹으면서한 번 더 베꼈고, 그 시들이 시시해서 혹은 그 시들에 매혹당해서 다시 되풀이 베꼈다.지극히 평범할 미래가 끔찍해져서 아니면 시인이 된 나를 상상하면서 당선소감과 함께 시들을 다시 옮겼다.
불면이 그 시들을 읽게 했고, 문학에의 헌신이라는 행복이 그 시를 베끼게 했다. 시 30편을 거듭거듭 옮기면 시의 높이와 깊이는 알듯말듯. 그리하여 렙 38.5도 이상의 고열을 거쳐간 백금의시들이 머리맡에 적재된다.
모두가 거칠고 급하게 만들어진 것들! 밤의 백열등 아래서 불후의 작품이었던 것도 신새벽의 탄식과 함께 읽으면 금방 쓰레기가 되고 만다. 그렇게 투고한 시들 중, 매일신문신춘문예 선자가 고른 것은 바로 전날 밤, 설레는 잠을 재촉하기 위해 마지막으로 억지로 썼던 '풀베기'란 소품이었다. 기막힌 내 청춘이었다.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李대통령, 대북전단 살포 예방·사후처벌 대책 지시
주진우, 김민석 해명 하나하나 반박…"돈에 결벽? 피식 웃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