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갓 졸업하고 유학준비를 하던 때였다. 추위가 몰아치던 그해 겨울의 어느날, 한 40대 남자가 진료소에 왔다. 술에 잔뜩 취해 마구 고함을 지르는 그 환자는 지팡이에 의지한 채 다리를 질질 끌며 들어왔다.
얘기를 들어보니 딱했다. 집도 없고 생활고로 아내는 가출한 상태였다. 그의 오른쪽 다리는 심한골수염으로 고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크리스마스 캐럴이 그로 하여금 더욱 술취하게 만들었던 것 같았다. 애송이의사인데다 내과전공인 나로서는 적당한 정형외과 전문의를 소개해 주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었지만그는 내게서 치료받기를 원했다.
매일같이 술주정을 하며 행패를 부리는 환자에게 나는 다리를 낫게 해주는 조건으로 술끊을 것을약속받았다. 밤새 읽은 책대로 곪은 상처를 제거하는 한편 그를 위해 간절하게 기도를 했다. 그의다리는 조금씩 차도를 보였고, 마침내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대학병원에서도 포기했던 만성골수염이 거짓말처럼 나은 것이다. 간호사도 믿기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6백일의 수명을 가진 쥐를 애정을 갖고 매일 쓰다듬어준 결과 9백일로 수명이 연장된 실험이 있다. '사이언스'라는 과학잡지에서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피속에서'틀레스로몬(tlethromon)'이라는물질이 발견됐다는 보고가 있다. 틀레스로몬에 대해서는 질병에 대한 면역을 증가시킬 것이라는학설이 있다.
의사와 환자사이뿐 아니라 모든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서로가 애정을 갖고 최선을 다한다면 놀라운 결과가 일어날 수 있음을 실감케한 경험이었다. 그 겨울의 기억은 그 환자와 나에게 잊을 수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됐다.
박언휘〈경산대 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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