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드시 살아있을 것이라는 실낱같은 희망이 무너지는 순간, 그들의 가슴은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졌다. 그토록 그리워한 부모 형제의 소식이 '사망 확인'으로 날아들자 땅을 치며 통곡을 그칠줄 몰랐다. 사망 소식을 차마 믿으려 하지 않았다. 꼭 살아있어야 한다고 절규했다. 마침내는 무심한 세월을 원망하며 뒹굴었다.
그랬다. 50년의 세월은 너무나도 긴, 통탄스런 시간이었다.
27일 이산가족 방북단 후보 200명이 신청한 북쪽 가족의 생사확인 명단 공개는 생존의 기쁨보다 사망과 확인불능이 더 많았다.
50년 당시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부모와 언니, 남동생을 채 볼 겨를도 없이 다니던 회사차량에 실려 단신 월남한 김종인(71·여·대구시 수성구 신매동)씨. '온 가족을 꼭 만날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외로운 세월을 버텨온 그녀에게 이날 통보된 생존자명단에는 조카 한명의 이름만 올라있었다. 김씨는 "언니와 남동생만이라도 살아 있을줄 알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남편과 언니,시댁식구를 찾기위해 이산가족방문 신청을 했다 언니의 생존사실만 확인한 강성덕(71·여·대구시 달서구 진천동)씨도 "언니를 만날 수 있다니 꿈만 같다"면서도 남편 생각에 가슴을 쳤다.
이번에 김씨를 비롯해 대구에서 모두 7명이 북쪽 가족 29명의 생사확인을 요청했지만 생존 확인은 12명에 불과했다. 이 중에 4명은 부모나 어머니가 살아있는지를 북쪽에 알아봐달라고 했지만 모두 사망한 것으로 통보받고 비통해했다.
남쪽 200명의 방북후보가 상봉대상자로 북쪽에 의뢰한 1천201명가운데 생존 확인은 276명에 불과했다. 사망자가 392명이고 확인불능이 168명이었다. 북한이 의뢰자 가운데 849명만 생사여부를 확인·통보해왔는 데도, 이처럼 살아있거나 연락이 닿을 수 있는 친인척들이 적었다.
북측이 남한에 전달해온 생사확인을 거친 방북후보자 138명 가운데 12명은 북한에 사는 가족들이 모두 사망했거나 연고가 아예 확인조차 할 수 없어 당사자들의 실망감이 컸다.
더욱이 북쪽에 부모가 살아있는 방문후보자는 1명뿐이어서 부모를 찾는 이산가족들에게 긴 세월의 아픔을 안겨줬다.
이산가족의 생사여부를 확인한 이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한편에서는 방문후보 명단에조차 오르지 못한 실향민들의 애타는 마음이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이날 아내와 딸의 생존소식에 눈시울을 붉히던 최성록(78·서구 비산1동)씨의 옆에는 6촌동생 이황엽(70·북구 동촌동)씨가 북쪽에 두고온 홀어머니와 여동생 4명의 생사를 알길이 없어 연신 고개를 떨궜다. 이산가족 방문단 후보에서 빠진 이씨는 "50년을 기다렸는데 1, 2년 더 못기다리겠느냐"며 "다음엔 꼭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애써 마음을 달랬다.
金炳九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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