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정말 은현이냐. 그동안 어떻게 지냈노".백수(白壽)를 앞둔 어머니는 반백의 아들을 끌어안고 묻고 또 물었다.
지난 23일 오후 대구시 북구 복현동. 성난기(95)할머니는 조총련 방문단으로 돌아온 큰아들 노은현(72.일본 가와사키현)씨를 마주하는 순간 50년이 넘는 생이별의 세월을 지우려는 듯 부둥켜 안은 채 떨어질 줄 몰랐다.
성 할머니는 일제시대 대구에서 비밀결사조직을 결성해 달성지역 한 부호로부터 군자금을 받은 사실 때문에 옥고를 치른 남편의 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지난 37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해방후 큰아들 노씨와 남편을 남겨두고 차남 화현(67)씨와 딸 순자(64.달서구 진천동)씨를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온 성 할머니는 한두차례 일본을 드나들다 47년부터 이념의 굴레에 묶여 더이상 아들을 만날 수 없었다. 남편과 큰아들이 조총련에 가입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그 뒤 북한으로 들어가고(63년 사망) 큰아들은 조총련계 '민족학교'에서 최근까지 재직하는 바람에 지금껏 성할머니는 생이별의 고통을 삭이며 살아왔다.○…45년만에 조국을 방문해 동생 판갑(75.대구시 동구 율암동)씨를 만난 차판수(78.여.가가와현)씨도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동생의 손을 잡고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차씨는 "해방직후 남편을 따라 일본으로 갔다 금방 되돌아올 수 있을 것으로 믿었었다"면서 일본으로 건너갈 당시 3살이었던 조카 재원(48)씨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18세의 꽃다운 나이로 지난 38년 남편을 따라 일본으로 건너가 해방전 시부모의 부음소식에 일시 귀국한 뒤로 50여년만에 고향을 찾은 조정옥(85.여.후쿠오카현)씨도 조카 병로(61.전직 언론인.대구시 남구 봉덕동)씨를 만나는 감격을 맛보았다. 23일 조카의 어머니인 올케의 제사에 참석하고 하룻밤을 지낸 조씨는 24일 고향인 김천시 봉산면을 둘러본 뒤 왜관읍 부모님 산소에서 성묘를 했다.
○…24일 고향인 칠곡군 약목면 동안리를 찾아 부모 산소를 성묘한 조총련 재일동포 배도원(79.일본 가나가와현 상공회 고문)씨. 그는 해방 전 만삭인 아내와 만주서 헤어진 뒤 지난 89년 이후 일본에서 아들 태봉(55.구미시)씨 등 친지들과 3차례 상봉을 했지만 고국 땅을 밟은 건 56년만에 처음. 산소 앞에 엎드린 배씨는 "자식 노릇 못한 불효자식을 용서해 주십시요"라며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18세에 일제 징용에 끌려 갔다가 58년만에 고향 상주를 찾은 이우봉(74.조총련 아키다시 본부 고문)씨는 부모 묘소를 찾아 1시간여 동안 눈물로 참배. 밤에는 상주시 연원동에 있는 6촌 동생인 재근(61)씨 집에서 밤새워 술과 음식을 들며 얘기꽃을 피웠다. 현재 일본 아키다시에서 파친코 경품업을 하고 있는 그는 일본 후미시 탄광에서 일하다 달아났던 일, 혼자 일본을 떠돌아 다니며 끼니를 굶었던 이야기 등을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58년만에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고향을 찾은 남호황(77.일본 지바시 총련상공회 회장)씨는 형 호정(83)씨와 누나 차덕(81)씨를 만나자 쌓였던 그리움이 복받친 듯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차창밖으로 본 고향산천이 몰라보게 달라져 놀랐다는 남씨는 일본에 있는 12살 외손녀가 한국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전해달라고 써준 편지를 낭독하기도. 남씨는 "총련의 고향방문은 남북 정상회담의 결실로 앞으로 남북관계가 호전될 것으로 보며 통일도 곧 되리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63년만에 귀국한 최해문(76)씨는 고향인 경주시 양남면 나산리 부모 묘소를 찾아 통곡하고 용서를 빌었다. 고향마을에 들른 최씨가 의식이 희미한 사촌형수(90)를 붙잡고"일본 떠났던 시동생을 알아보시겠읍니까"소리치자 형수는 "살아 있었구나"하면서 시동생의 손을 꼭잡았다. 일본에 건너가 일찌감치 조총련에 가입해 총련 본부장, 조선신보사 부사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최씨는 "마지막 소원이라면 통일과 고향에 묻히는 것"이라고 말했다.
○…60년만에 고향 울산땅을 밟은 박학기(82)씨는 23일 울산공항을 나오면서 흐르는 눈물을 닦느라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박씨는 "22세 때 먹고 살기가 어려워 일자리를 찾아 일본으로 건너간 것이 부모형제와 기나긴 헤어짐의 길이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영원히 만날 수 없을 것만 같던 오누이들과의 만남, 어린 조카손자들의 응석에 함박웃음을 지은 박씨는 "부모님을 뵙지 못한 것이 가슴 아프다"며 통한의 지난 세월을 되뇌었다.
사회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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