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정정(政情)은 과거 우리나라 정치상황과 닮은 꼴이다. 3선 개헌이 그렇고 통치의 기본목표로 경제발전을 삼았다는 점도 유사하다. 국가보안법을 제정하고 헌법재판관을 해임하는 무리수까지 두며 3선출마를 강행한 후지모리 페루대통령의 정치역정은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행로를 연상케한다. 당선에 항의하는 시위대에 경찰이 발포해 수십명이 다치는 페루 정치혼란을 '문민독재'로 세계각국은 평가한다. 지난날 우리나라의 권력의 행적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페루정부가 최근 정국혼란의 핵심인물인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국가정보부(SIN) 부장의 망명을 파나마에 요청한 것은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의 몰락과정도 엿보게 한다. 절대권력자가 정치적 위기 상황에 몰리면 탈출의 한 방편으로 삼아온게 측근의 축출이고 보면 몬테시노스의 공직 축출은 예고된 수순인 듯 싶다. 김형욱이 스스로 택한 망명과는 궤적을 달리하지만 파워게임에서 밀린 것으로 보인다.
일단 후지모리의 파워게임 승리로 페루사태는 진정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간다지만 혼란 요인은 여전히 남아있다. 페루군부가 몬테시노스를 보호하기위해 페루와 가까운 파나마로 피신시킨 뒤 뒷날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정치분석가들은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페루정부가 망명을 주도하고 파나마정부가 이를 거부함으로써 군부가 반발할 수 있는 근거가 생겼다는 점도 한 요인으로 본다. 페루군 일부병력이 몬테시노스 처남의 지휘로 수도 라마를 향한다는 이동설도 페루정정의 혼미의 한 모습이다.
어쨌든 일련의 사태는 후지모리의 집권욕에 원인이 있다. 야당의원을 매수하는 장면이 TV에 방영되자 빠른 시일내에 총선거를 약속했다가 내년 7월까지 대통령직을 고수하겠다고 번복한 식언은 여느 독재자들의 행태답습이다. 국민들의 민주주의 욕구를 내팽개친 집권연장 야욕은 또다른 불행을 부를수도 있다. 절대권력은 부패로 이어진다는 말이 새삼 되새겨지는 페루의 사태다.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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