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진 정신문화 연구원장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고문서가 결국은 조건없는 반환이 아니라 프랑스가 주장했던 대로 우리 문화재를 빌려주는 이른바 '맞트레이드' 쪽으로 결말이 날 것 같다.
한국측 반환협상 대표인 한상진 정신문화연구원장이 밝힌 프랑스측과의 3차례 협상 결과 구두 합의한 내용을 골자만 추리면 이렇다.
즉 프랑스측이 그동안 교류대상에서 제외했던 어람용이자 유일본(64책 추정)을 돌려주며 그 대신 한국은 국내에는 여러 개의 복본, 즉 카피본이 존재하는 같은 시기(1630~1856)에 나온 비의궤 도서를 장기 임대형식으로 빌려준다.
우선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이 소장 중인 외규장각 약탈 고문서 297책 중에 이들 유일본 어람용 의궤들을 맞교환하고 나머지 의궤들도 같은 방식으로 오는 2001년까지는 반환받는다.
하지만 이런 맞교환 방식을 통해 우리가 얻은 것은 없으며 오히려 너무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번 협상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번 사태의 본질과 반환협상을 둘러싼 갖가지 오해를 짚어본다.
1. 문화재 맞교환의 실상
반환방법을 놓고 영구 임대니 등가교환이니 하는 말들이 오고 가면서 굉장히 복잡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하다.
도둑이 내 물건을 빼앗아 갔다. 그런데 내가 내 물건을 돌려받는데 그만한 값어치가 나가는 다른 내 물건을 내다 주고 가져 온다. 참으로 해괴망칙한 반환방법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번 외규장각 반환 방식은 이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2. 실익을 챙겼다?
따라서 맞교환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얻었는지 그 득실 관계는 분명해진다. 내물건 100원어치를 돌려받는데 100원어치의 값을 치러야 하므로 얻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오히려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무엇보다 130여년전에 일어난 프랑스 함대의 외규장각 고문서 약탈이 불법행위였다는 증거를 그 어디에서도 얻지 못했다.
3. 반환협상이 7년이나 걸렸다?
외규장각 반환협상이 7년씩이나 질질 끌어왔기 때문에 빨리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
18세기 후반 나폴레옹이 이집트에서 약탈한 로제타스톤은 고국을 떠난 지 무려 200년 동안이나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이집트는 프랑스를 향해 로제타스톤을 돌려달라 하고 있다.
그런데 외규장각 고문서 만큼은 어찌된 셈인지 국민의 정부, 혹은 그 협상 전권을 위임받은 한상진 정신문화연구원장이 반드시 내가 해결하고 말리라는 자세로 달려들었다.
현 정부나 한 원장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차기 정권, 차기 대표에게 넘겨야 한다. 또 거기서 못하면 그 후대, 다시 그 후대로 넘겨야 한다.
4. 외규장각 도서가 한-불 관계의 걸림돌이다?
외규장각 고문서의 경우에도 도덕적인 우위와 정당성은 한국에 있다. 외규장각 도서반환 문제가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은 우리 문화재를 불법 약탈했고 그렇기 때문에 도덕성을 결여한 프랑스이지 한국은 아니다.
5. 유일본이 문화재적 가치가 더 뛰어나다?
고려청자가 많다고 해서 그것 중 어느 하나를 외국에다 줘버릴 수는 없다.
그런데도 협상단은 약탈 외규장각 고문서 중 임금이 보던 어람용이자 유일본인 의궤를 받아오는 대신에 국내에 여러 복본, 즉 카피본이 있는 고문서를 골라 프랑스에 대여하겠다는 해괴한 발상을 했다.
6. 여러 카피본이 있으면 문화재 가치가 떨어진다?
하고 많은 국내 고문서 중 왜 하필 프랑스에 빌려줄 맞교환 대상으로 여러 복본이 있는 의궤를 택했는가? 말할 것도 없이 국내에 여러 개가 있으므로 하나쯤은 외국에 줘도 괜찮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수천점이 있는 고려청자가 그렇듯 여러 복본이 있다 한들 그들 복본 하나하나도 귀중한 우리 문화 유산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황남대총이 소중한 만큼 어느 이름없는 신라인의 고분 또한 소중하다.
결론적으로 외규장각 고문서에 대한 이런 갖가지 잘못된 생각들 때문에 우리 문화재를 찾아오는데 우리 문화재를 내주어야 하는 이상한 꼴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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