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도 계단에서 웅크리고 자던 소년이 마침 의경(義警)들의 불심검문에 걸려들고 있었다. 의경들은 소년의 가출 이유에 대해 캐물었고, 소년은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어 고아원을 뛰쳐 나왔다"고 대답했다. 그러니까 주위의 그 누구도 소년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주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의경들이 소년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것도 소년의 답답한 심정과 상처받은 마음, 그리고 이제부터 내리 굶었다는 말에 따뜻한 어조로 공감까지 해주면서. 아직 여드름이 채 가시지 않은 앳된 의경들의 으젓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신선한 충격을 받기에 충분했다. 그러자 그들의 장면 위에 삽화 한토막이 오버랩되어 떠오르는 것이었다.
한 노인이 강가에서 강을 건너지 못하고 있었다. 말을 탄 숱한 사람들이 노인의 곁을 스쳐갔지만, 노인은 그들에게 강을 건너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한 젊은이가 말을 몰고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노인은 그 젊은이에게 다가가 강을 건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젊은이는 쾌히 노인을 말에 태우고 강을 건너가며 공손하게 물었다. "앞서간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어째서 늦게 온 저에게 부탁을 하셨는지요" 그러자 노인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사람들 눈에는 사랑이 없어. 그러나 젊은이의 눈에는 사랑이 넘쳐나" 그 젊은이는 바로 훗날 미국의 3대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이었던 것이다.
이제 의경들은 햄버거와 콜라를 사다 소년에게 먹이고 있었다. 그리고 소년의 어깨를 팔로 감싸고 경찰서 방향으로 멀어져 갔다. 소년도 아마 의경들의 따뜻한 배려에 세상이 결코 어둡지만 않다는 위안을 받았으리라. 그러면서도 한편 때묻지 않은 아름다운 젊은이들 앞에, 기성세대의 낡고 편협한 작태들이 거침없이 펼처지는 우리 사회가 심히 부끄러워짐을 느꼈다. 그러나 우리의 젊은이들은 더 밝고 바른 세상을 열어 갈 것이라고 믿는다. 왜냐하면 아까 그 의경들의 눈빛에서 훈훈한 사랑이 풋풋하게 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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