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기(史記)'의 '고조본기'(高祖本紀)는 한나라를 세운 유방, 즉 고조를 두고 "젊어서 집안 일을 게을리한 무뢰(無賴)였다"고 적고 있다. 황제 등극전 유방을 스승으로 삼았던 명의 건국자 주원장에 대해서도 그 뿌리가 건달이자 깡패였다는 학설이 있다.
중국 사학계는 유방이나 주원장처럼 떼지어 빈둥거리며 때로는 협박하고 공갈치는 무리들을 일컬어 유맹(流氓)이라고 한다. 유맹에 대해 학자들은 그 뜻을 엄격하고 철학적으로 정의하려 들지만 우리 말로 쉽고 간단하게 정의하면 깡패 혹은 건달이다.
유사이래 이런 깡패 혹은 건달 집단은 수없이 많았다. 다행스럽게도 중국사는 이에 대한 각종 기록을 적지 않게 남겨두고 있다.
경북대 중어중문학과 이치수교수가 최근 대우학술총서 제501권으로 역서 '중국유맹사'(아카넷)를 '중국 건달의 사회사, 건달에서 황제까지'란 부제를 붙여 펴냈다. 저자는 천바오량(陳寶良). 1993년 중국사회과학출판사에서 나온 이 책은 바로 명나라 사회사 연구에서 얻은 성과를 바탕으로 '유맹'이라는 독특한 주제를 통해 중국사를 탐구한다.
중국 건달의 변천사를 전체적으로 조명하면서 중국 사회의 면모를 심층적으로 분석한 이 책은 이색적으로 비학문적인 테마(깡패, 건달 등)도 아주 중요한 학술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중국사에서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건달 집단이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려졌다. 진(秦)이전에는 타민(惰民), 파민(罷民), 유협(游俠) 등으로 불리다 진한시대에는 악소년(惡少年), 위진남북조 시기는 무뢰배, 수당 시기는 방시악소(坊市惡少) 등으로, 송대엔 파락호, 도자(搗子)로 언급된다. 원대엔 무적지도(無籍之徒), 명대에 광곤(光棍)과 날호, 청대엔 무뢰곤도(無賴棍徒)가 등장했다.
이 책은 이같은 각 시대별 변화상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또한 시대사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유맹의 정의, 유맹과 기타 사회 각 계층과의 관계, 사회정치.경제.군사.문화 등 제반영역에서의 활동과 영향, 각 시기별 유맹활동의 수단(사기.공갈.싸움.약탈.유괴 등)을 생동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색인까지 합쳐 769쪽이나 되는 분량이다. 하지만 학술서이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는 점이 특징. 게다가 역자는 성실한 번역과 해설을 통해 독자들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중국문화현실에 대한 색다른 이해를 돕고 있다. 3만원.
정창룡기자 jc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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