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유라시아 대륙을 달린다(9)

◈노보시비르스크-하

인투리스트 호텔 앞 광장에 커다란 광고판이 하나 서 있다. 말 탄 미남 카우보이가 담배를 물고 있는 미국 담배 말보로 광고판이다. '세계화' 혹은 '자본주의화'를 지향하는 노보시비르스크의 입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노보시비르스크는 시베리아의 도시들 가운데 가장 현대화, 국제화 한 도시다. 시베리아의 각 도시를 동서로 잇고 남북으로 연결하는 지리적 중심이자 물류의 중심으로서, 시베리아 전역의 통과 화물들을 분배하는 기능을 맡고 있다. 시베리아에서 가장 양호한 시설을 갖춘 국제공항이 있고, DHL, UPS, EMS, TNT, FedEx services 같은 세계적 화물택배 회사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실만 보더라도, 물류와 관련된 노보시비르스크의 현주소를 추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러시아 시장을 겨냥한 세계 각국의 많은 기업체들이 이 도시에 주목하고 있다.

그 사실은 세계적 지명도의 프랑스 전시회 회원 업체이기도 한 민간 전시업체 시베리안 페어(The Siberian Fair)'의 활동 상황을 살펴보면 잘 알 수 있다. 지난 89년에 설립된 것이다. 시내 중심가에서 차로 10분 거리인 크라스니 프로스펙트 거리에 있는데, 도착해 보니 건물 외벽에 전시에 참여했던 나라들의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태극기도 보였다. 한국은 그러나 지난 98년의 양국 경제위기 이후 국가의 지원을 받는 대규모 전시회는 중단했고, 대신 개인들만 소규모로 참여하고 있다. 주된 품목은 생활용품이다.

시베리안 페어는 지금까지 장례용품, 관광레저용품 전시회를 비롯해 500회 이상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매년 3월마다 소비재전을 여는 것을 비롯해 90회 이상의 자체 기획전시회도 개최하고 있다. 전시공간은 6천500㎡인데, 참가비는 거의 없고 부스 사용비용은 1sq(9.3㎡)당 150달러이다.

참가업체들을 위해 대외적으로는 지역 라디오 채널에 홍보를 의뢰하고 유력 언론인들과의 간담회도 주선하고 있다.

건물 안에는 전시공간과 별도로 국제통신 설비와 고속 메일 시스템, 레스토랑, 스낵 바, 약국 등 편의시설이 들어 서 있다.

나탈리아 겐나지예브나 파스투호바 사장은 "현 러시아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품목은 감시카메라 같은 보안기자재에 관한 것이다. 개인과 은행을 비롯한 기업 모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 99년의 시베리아 보안기자재(Sibsecurity)전은 전년도의 배 이상 규모로 치러졌다"고 전했다.

올가 이고리예브나 예르코비치 홍보과장은 한국물품과 관련해 "한국의 아동복은 인기품목이다. 나도 아이들에게 한국옷을 입히고 있다. 외투도 매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당연히 상공인들도 자체 역량을 강화하고 위상을 높이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노보시비르스크에서는 지난 91년에 상공회의소가 설립됐다. 현재 회원사는 260개다. 그러나 회원사들의 수준이 숫자에 비해 고만고만 해서 아직까지는 상의의 위상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은 상태다.

보리스 빅토르비치 브르실로브스키 의장은 "우리는 기술력이 뛰어난 중소기업과의 합작을 선호한다. 아직 걸음마 단계라 기업의 투명성이 부족하고 기술력과 자본력이 한참 떨어지는 게 사실이지만, 국제적 시장 환경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바이어를 발굴하고 싶거나 시장동향을 알고 싶으면 우리에게 문의해 달라.적극적으로 응하겠다. 노보시비르스크에 자리를 잡으면 서시베리아 전체를 관리 할 수 있으므로 이 도시에 주목해 주기 바란다" 고 말했다.

주정부의 얘기를 들으면 아무래도 노보시비르스크에 대한 개념이 좀 더 확실하게 잡힌다. 니콜라이 안드레이비치 티텐코 부지사는 도시에 대해서 자랑을 해 보라고 했더니 "사랑하는 도시라 한참을 할 수 있다"면서 즐거운 표정으로 정말 한참을 이야기 했다. 그의 자랑을 간추리면 이러하다.

노보시비르스크의 정체성은 과학 기술과 문화에서 비롯된다. 북쪽 가스전의 생산규모나 농축산물을 자급자족한다는 사실은 별 의미가 없다. 이 도시가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원자력과 화학 분야에 관한 한 세계 제일임을 자부하는 고난도 고집적 기술과 러시아 최고 수준의 심포니오케스트라를 비롯한 양질의 음악 문화이다.기술력의 경우 문제는 상품화하는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인데, 최근들어 그 중요성이 대두돼 발상의 전환을 적극 시도하고 있다. 한 예로 AN38기라는 여객비행기(시베리아~중앙아시아 구간 운행)의 경우 미국식 엔진에서 노보시비르스크에서 개발한 엔진으로 대체, 가격을 대폭 떨어뜨렸다.

부지사는 또 "10년 사이에 고급 과학두뇌가 해외로 유출되는 사례가 많아 걱정"이라면서 "(그렇다고 해서)도시 자체의 전공 과학 수준이 훼손된 건 아니지만 각 대학마다 두뇌유출을 막기 위한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개발중"이라고 덧붙였다.

외국 기업들의 현지 투자는 기대에 못미치고 있다. 부지사는 "주정부 차원에서 법적으로 투자금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고, 세제 혜택도 주고 있다"면서 "컵라면 현지 생산공장 설립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는 한국 야쿠르트의 경우 자신들이 공장 부지를 마음대로 선택하도록 조건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관광에 관한 한 노보시비르스크는 경유 도시다. 서울~노보간 비행기가 1주일에 한 번 떴으나 지난 98년 이후 단절됐다. 알투스 여행사의 스코릭 나탈리아 블라지미로브나 부사장은 이 도시를 중심으로 지방 도시를 둘러보는 5일짜리 투어를 추천했다. 그녀는 특히 차로 8시간 정도 걸리는 알타이 관광을 권했다. 그녀에 의하면 알타이는 제2의 스위스로서 주류 인종인 황인종의 전통민속 놀이가 유명하고, 약초가 다양하며, 사슴이 대규모로 방목되고 있다고 한다.

그녀는 "알타이는 한 번 가 보면 반드시 다시 찾게 된다"고 말했다. 알타이어계의 언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으로서 새삼 호기심이 발동했다.

글:이광우기자

사진:강원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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