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산골소녀 영자'의 비극

산골에서 노루처럼 살다 '문명세계'로 나선지 4개월만에 아버지의 사망이라는 비보를 들고 고향으로 되돌아 간 산골소녀 이영자(19.강원도 삼척시 신기면)양의 슬픔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세태의 결과물이어서 충격적이다. 후원회장이라는 사람이 이양의 TV출연.광고료를 가로채 갔고 경찰에서 당초 판명한 단순변사가 피살로 밝혀져 마침내 살인 용의자가 검거됐다. 우리가 통상 보아온 경찰 초등수사의 허술과 유족의 의문제기 등으로 이어지는 '한국적 수사'가 영자를 두번 울린 셈이다.

▲이양 부녀의 비극을 두고 왜 이들의 삶을 그대로 두고 보지 못했을까 하는 물음을 던지곤 한다. 물론 슬픔을 오게 한 사회적인 챔임 거론으로 볼 수 있으나 있는 그대로 두어야 할 '순수한 존재'를 기어이 옆에 두고 보려는 현대인들의 소유욕이 부른 비극이라는 생각이 든다. TV도 없이 구름처럼 바람처럼 살았던 이들 부녀에게 부추긴 삶의 갈등은 영자의 가출을 불러 이양에게서 결국 모든 것을 빼앗은 것이다. 부녀의 산골생활을 들쑤셔 삶의 뿌리까지 흔들어 놓은 것이어서 전파매체의 영향력의 한 단면을 엿보게 한다.

▲영자의 슬픔은 '미디어의 영향과 책임'이라는 논란을 우리에게 새삼 일깨웠다. 어느날 들이닥친 TV카메라가 영자의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고 공부하러 서울로 간 영자는 혼자 남은 아버지에게 제대로 연락없이 지냈다. 영자 이름으로 낸 수필집 '꽃이 피는 작은나라'는 대부분 대필작가가 썼다고 한다. 어른들에 의한 스타만들기에 영자는 혼이 빠져 나갔거나, 허위가 진실로 둔갑하는 사태를 보고 경악했을지도 모른다. 이양의 도시생활은 이처럼 매체의 역기능과 영향이 혼재된 것이어서 매체의 책임이라는 논란의 살아있는 교재다. 'TV보고 범행계획했다'는 살인용의자 살인동기 토로도 역시 이 범주에 속할는지 모른다.

▲만약 잘못이 있다면 매체만의 책임일까. 영자의 이야기를 본 시청자나 영자의 상품성을 이용하려 했던 사람들 모두의 책임이 아닐까. 우리는 언제나 매체에 각광을 받으면 사생활을 짓밟힐 정도로 밤낮없이 인터뷰 대상자에게 매달린다. 상품가치가 있으면 글을 대신 써주거나 이미지 조작도 서슴지 않는다. '스타조작'에 대한 공범행위가 수없이 반복되고 있다. 중요한건 관심도 있어야 하지만 무관심도 애정의 표시라는 점이다. 제발 이젠 영자를 홀로 두자.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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