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상덕의 대중문화 엿보기

"귀부인은 얼굴이 붉은 것을 싫어하고 창백한 것을 아름답게 여겼다". 1712년 함부르크에서 출판된 '호기심 많은 고고 연구가'에서 정의한 미인의 모습이다. 이후부터 미인은 백분을 칠하고 볼이나 이마에 애교점(beauty spot)이라는 검은 무슈를 붙여 자기의 얼굴이 누구보다 창백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지금도 미인은 분(粉)을 바른다.

우리나라에서 한해 선발되는 미인의 수는 대략 2000여명. 진해 '벚꽃', 남원 '춘향', 양평 '산채', 영광 '굴비', 보령 '머드', 인천 '새우', 안동 '한우', 영양 '고추', 포항 '장미', 성주 '참외' 등 가히 미인선발대회 천국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미인대회를 여는 이유는 지역 특산물 홍보를 통한 이익 창출과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향토축제를 통해 자신의 원형을 확인하고 또한 그 원형의 확대재생산성을 위하여 고향을 방문하게 하는 데 있다. 요즈음 미인대회 개최가 갈수록 힘들다고 한다. 이는 이농현상 등으로 인해 젊은이가 없기 때문이다.

해마다 4월이 오면 미인대회에 출전하느라고 결석이 잦은 학생들을 만난다. 그리고 어떤 학생은 1학기 내내 미인대회를 옮겨 다니며 참가하기도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말하는 미인대회 입상자에 대한 특전은 모델, 탤런트, 리포터 활동 지원이고 그들이 할 일은 외국 자매 도시를 방문하거나 판촉활동에 참여하는 것 등이다. 그러나 미인대회 입상자에게 자치단체가 위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는 경우는 드물다. 애초부터 미인대회 수상자를 활용하기 위한 자치단체의 연중 프로그램이 빈약하고 수상자 또한 향토 특산물에 대한 애착도, 지역에 대한 정체성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 출전하는 미인대회 참가자는 자치단체의 약속을 믿는다. 그래서 비록 읍·면 단위로 할당된 강제적 지원이지만 위장 전입을 하고 나이를 속여 출전하기도 한다.

미인대회 참가자 대부분은 스타가 꿈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미인대회 참가자의 심사기준과 스타의 선발기준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스타는 카메라 테스트가 필수이다. 그래서 눈이 들어가고 광대뼈가 거의 없는 보통 사람보다 작은 얼굴이 유리하다. 글래머 스타 김혜수는 보통사람의 얼굴이지만 정면 촬영을 싫어하고 4분의3으로 비껴 찍고 싶어한다. 이제 향토 미인대회는 나이나 성별을 초월하여 그 지역 특산물을 가장 잘 아는 지역민의 몫으로 두어야 할 것 같다. 그래야 지방 문화가 살아나고 실제 특산물 홍보도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대경대 방송연예제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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