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G 충전소 문제는 최근에 불거진 골칫덩어리. 주민들은 피해를 우려해 어떻든 저지하려 하고, 업주는 "법에 맞춰 땅까지 사 놨는데 무슨 소리냐"며 답답해 하고 있다. 이러니 담당 시군청에서는 법에 맞춰 허가를 내 줬다가도 나중에 주민 반발에 밀려 다시 취소하는 소동까지 일으키고 있다.
◇심각한 갈등 = 선화청구타운(513가구) 영호맨션(186가구) 등 아파트가 몰려 있는 경산시 진량읍 선화리. 경산시청은 지난 2월17일 아파트 단지에서 140여m 떨어진 곳에 충전소 허가를 내줬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주민 180여명은 지난달 17일 시청으로 몰려가 허가 취소를 요구하며 시위했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인 손명환씨는 "조금 떨어진 진량에도 충전소가 있는데 뭣하러 아파트 단지 주변에 허가하느냐"고 했다. 두 아이의 엄마라고 한 주부는 "집 앞에 거대한 위험 시설물이 들어서면 아이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시청 홈페이지에도 "법 규정상 맞다고 해도 현지 사정상 너무 위험하다"며 허가 취소를 요구하는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경주시청은 작년 이후 무려 8개의 충전소를 허가했다. 그러나 도지동에서는 버스 승강장과 인접했다고 해서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이곳 주민 권오경(59)씨는 "3월에 100여m 정도 떨어진 2곳에 잇따라 충전소를 허가했다"며, "버스 승강장 인접에 충전소를 허가해 어쩌겠다는 것이냐"고 했다. 박우성(61)씨는 "마을 중심에 허가돼 사고 나면 대형 참사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시청 교통행정과도 "충전소 예정지 진입로에 버스 승강장이 있어 차량들 끼리 충돌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낸 바 있다.
안동시 용상동에서는 주택가 인근에 충전소 허가가 나 주민.지주들이 반발하고 있다. 허가 신청을 처음 낼 때는 50m 거리 내에 한 숙소 건물이 있어 반려됐다가, 노무자들이 모두 주민등록을 이전한 뒤 허가가 난 것. 그러나 주민 권호경(43)씨는 "주택과의 안전거리가 서류상으로 꿰맞춰져서는 안된다"고 했다.
◇법과 현실 사이 = 법률 상으로 충전소는 주택 등과 50m 이상만 떨어지고, 부지가 600평을 넘으면 허가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곧바로 민원으로 번지고 있다.
안동시청 김경철 에너지관리 담당은 "법상으로 하자가 없으니 어떻게 허가를 내 주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선화리 문제로 골치가 아픈 경산시청 이종원 연료 담당은 "그래도 주민 반대가 많아 사업자에게 취하를 요청하기도 했지만 현실적으로는 실현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경주 도지동 문제와 관련해서 조병찬 상정계장은 "주민들이 반발하자 사업자가 반발 완화 때까지 보류하겠다고 취하원을 냈다"고 했다. 그러나 탑동 경우는 1차 허가를 내줬다가 뒤에 건축법 등을 이유로 시청측이 반려, 업주가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주민들의 반발에는 현행 법률의 헛점도 작용하는 듯하다. 50m만 떨어지면 괜찮다고 했으나, 사고 때 파편이 200m나 날아 간 경우(경기도 부천)가 있고, 반경 100m 이내의 건물이 피해를 입은 경우(전북 익산)도 있다.
이런 법과 현실 사이의 격차를 지혜롭게 풀어 나가는 곳도 있다. 경북도내에선 울릉도에만 유일하게 LPG 충전소가 없을 뿐, 대개의 시.군에는 2~3개가 있다. 그러나 이미 3개가 있는 가운데 1개가 추가로 허가 난 의성, 1개 있는 청송 등에선 민가가 없는 국도변에 충전소가 위치해 별다른 마찰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포항 경우 11개 충전소가 영업 중인데다 올해 또 5개 허가 되는 등 도합 7개가 추가로 개설을 추진 중이지만, 모두 옛 영일군 읍.면.동 지역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나? = 이같은 충전소는 LPG 차량을 위한 것. 기름 사용 차량들을 위해 주유소가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LPG 차량은 1982년부터 허용되기 시작했다. 국가가 관련 규정을 만들어 먼저 택시에 적용한 것. 이어 89년엔 15인승 이하 승합차.경화물차로 범위가 확대됐고, 1990년에는 국가유공자.장애인용차도 LPG를 쓸 수 있게 했다.
또 93년엔 1t이하 화물차, 95년엔 승합차 및 일반 화물차 등으로도 점점 범위가 넓어졌다.
이런 가운데 작년에는 '장애인'의 범위를 확대, LPG 차 수요가 더 늘었다. 그러면서 장애인들에겐 휘발유 차를 개조할 수도 있게 허용됐다. 그 결과 상주 경우 1996년 연간 6대에 불과했던 개조가 1999년엔 160대, 지난해엔 110대로 증가했다. 의성에서 개조된 차량도 1996년 2대, 99년 116대, 작년 103대나 됐다. 경산에선 작년에 305대가 개조됐고, 올들어서도 이미 70대가 개조됐다. 이런 개조 차량은 LPG 차량 공식 집계에서 조차 누락돼 있고, 불법 개조 역시 만만찮다.
◇LPG 차 계속 늘까? = 안동시청 지역경제과 조풍제씨는 "정부가 앞으로 LPG 가격을 휘발유의 70% 선까지 올릴 경우 사용자에겐 별 이익이 없어진다"며, 그럴 경우 LPG 차량 증가도 일시적 현상으로 그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LPG는 연비가 낮아 정부 방침 대로 값을 인상하면 휘발유 차량과 비슷한 연료비가 들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 태도도 LPG 차량 증가 억제 쪽으로 기울었다. LPG 가격 인상 방침이 이미 공표됐을 뿐 아니라, '자동차관리법' 시행규칙이 개정돼 작년 1월부터는 이미 10인승 이하는 승용차로 규정돼(종전엔 6인승 이하), LPG를 쓸 수 있는 승합차의 범위 역시 축소됐다.
정부의 이런 방침은 휘발유세를 많이 받기 위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1999년 당시 산자부 김열 가스과장은 "에너지세가 국세 전체의 14.5%(9조9천억원, 98년 기준)나 되고 그 중 휘발유세가 67%나 차지, "LPG 차량을 증가시키면 세수 결손이 불가피하다"고 공개적으로 경고한 바 있다.
경주.박준현기자 jspark@imaeil.com
안동.권동순기자 pino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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