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 정치인이 대성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소속 정당의 대변인으로서 명성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 정치의 정석(定石)이다. 그만큼 '대변인' 자리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정치 현안이 부각될 때마다 여야 각 정당은 대변인 입을 통해 촌철살인의 평가를 하기도 하고 자기 당의 입장을 변호하기도 한다. 그래서 대변인은 중진급 의원이 아니면서도 반드시 당 5역(役)에 포함되는 특혜를 누린다.
▲역대 정권을 통털어 자유당 시절 야당인 민주당의 조재천 대변인과 66년부터 10대때까지 7년8개월간 신민당 대변인을 맡았던 김수한 전 국회의장이 명 대변인으로 꼽힌다. 조 대변인은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촌철살인의 구호로 3.15 부정선거에 맞서 전국민을 공감시켰거니와 그의 논리정연하고 품격 높은 논평은 여당인 자유당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김수한 대변인은 박정희 정권의 힘의 논리 앞에서 야당이 김 대변인의 세치 혀로 버텨냈다고 할만큼 정곡을 찌르는 논평으로 유명했었다. 이밖에도 DJ와 YS 역시 정치초년병 시절 당 대변인으로 나름대로 눈길을 끌었던 것.
▲YS정권당시 3공때 만들어진 성수대교가 무너지자 야당 대변인은 "여당이 정치자금을 과잉 조달한 탓에 다리가 무너졌다"는 식으로 파상공세를 벌이자 여당의 박희태 대변인이 "그런 식이라면 경복궁에 불나면 대원군한테 덤빌테냐"고 핵심을 찔러 화제가 됐었다. 오죽 따가웠으면 당시 야당총재였던 DJ가 "저런 대변인을 데리고 있어 봤으면…"이라 했을까. 어쨌든 80년대이후에도 우리정치에는 박희태, 강재섭, 박지원 등 명대변인들이 재치와 순발력으로 우리 정치를 살찌웠던 게 사실이다.
▲근래들어 여야 대변인의 저질발언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나라당 대변인이 "목포 앞 바다에 목이 둥둥 떠다닌다는 말이 있다"고 꼬집자 이에 질세라 여당인 민주당이 야당은 근거도 없는 각종 설(說)과 의혹을 제기해왔다며 6설(說) 8혹(惑)으로 맞불질하고 나선것이다. "목이 둥둥…"식의 거북한 발언이라면 점잖게 "쯧쯧…그만 됐네. 애들 들을까 무서우이"정도로 끝내면 될 게 아닌가. 그런데 일일이 대응하다니… 그 나물에 그 밥이랄까. 과거 명대변인들이 보였던 재치와 순발력은커녕 막말로 일관하는 걸 보면서 근래들어 우리 정치가 자잘구레해졌다는 느낌을 새삼 갖게 되는 것이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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