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위기의 패션몰-시스템 특성화 실패

어디나 할 것 없이 패션몰들이 동시 위기를 맞고 있는 이유는 뭘까. 경기침체라는 외부 요인에 모든 책임을 돌리는 것은 개발업자, 운영법인, 상인들의 '자기 최면'이라고 할 수 있다.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부진이 한 원인이긴 하지만 개발업자-상인-운영법인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시스템 부재가 위기의 뿌리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엑슨밀라노 최현묵 이사는 "새로운 업태에 대한 진지한 접근 없이 상당수 패션몰 사업자가 부동산 개발업에만 지나치게 집중한 나머지 운영체계 도입을 소홀히 했다"며 "외부 시장에 대한 기대보다 내부 정비에 먼저 나서야 할 때"라고 말했다.개점 후 1년간의 영업실적이 시장진입 승패를 가늠하는 일반 잣대라면 패션몰은 시장진입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대기업 할인점들이 체계적이고 철저한 데이터에 의한 시장분석, 산지 및 생산기지와 직거래, 물류확보 등으로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여 시장지배력을 키웠던 것과 대조적이다.

지역 패션몰들은 생산.판매의 유통단계 일원화로 빠른 시간내 값싼 상품을 소비자에게 공급하겠다는 당초 계획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했다. 자체 봉제공장, 디자이너 센터 등은 오간데 없고 대다수 상인이 서울 의류시장의 하청인으로 전락했다. 선언에만 그친 패션몰 개발업자들의 '미사여구'에 상인들은 상권활성화라는 '모래성'을 쌓았고 개점 1년이 되기도 전에 밑바닥부터 흔들리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여기에 개발업자들의 점포 팔아먹기에 전문 상인이 아닌 일반투자자가 많이 몰려 상가의 특성을 제대로 살려나갈 수 없었다. 오는 31일 개점을 앞두고 있는 밀리오레도 일반투자자가 전체 분양물건의 80%에 이르러 전문상인을 유치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고 있는 것은 한 예다.

패션몰 사업에 있어 개발업자, 상인, 관리법인 등 사업주체들의 책임성 결여도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지적됐다.

베네시움의 한 입점상인은 "개발업자들은 분양에만 몰두하고 상인들은 관리법인이 관리비, 운영비 등을 어떻게 쓰는지 알 수 없다"며 "투명경영을 보장하고 상가를 활성화하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상인들의 문제도 적지 않다. 장사가 안되다보니 다른 상인들의 인기상품을 베껴 특정상품이 유행하면 상당수 점포가 같은 물건을 다른 값에 파는 경우가 많다. 층별 정체성이 없다보니 매장 전체의 특징이 생길 리 없다. 그 결과는 소비자 신뢰 저하, 상인간 갈등의 골이 심화 등이다.

이런 불신과 갈등은 해결주체도 없이 남의 탓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사태를 맞고 있다. 결국 개발, 운영, 관리를 총괄하는 시스템 부재는 패션몰 전체의 영업부진으로 이어져 상인, 운영법인, 개발업자가 아귀다툼을 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는 것이다.

전계완기자 jkw68@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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