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일 교과서 임나일본부설 허구파헤친다(2)

◈칠지도

일본사람들에게 신격화되어있는 일본의 신공왕후는 규슈(九州)에 있었던 왜로서 쓰시마의 시라기(新羅)를 정벌한 것이지 경주의 신라(新羅)를 정벌한 것이 아니었고, 일본 학자들이 임나를 김해.고령.함안 일대의 가야지역으로 비정한 것은 사실이 아님은 대마도에서 편찬된 '대주편년략'(對州編年略)에서도 나타난다.

대주편년략의 '산가요약기'(山家要略紀)에서 대마도는 고려국의 목(牧, 다스리는 곳이라는 뜻)이요, 新羅(시라기)가 있던 곳이다. 開化천황대부터 이 섬으로부터 습격해왔으므로, 주아이 천황이 豊浦궁으로부터 대마도에 나가서 新羅(시라기)를 정벌하여 마침내 이 섬을 빼앗았다고 쓰여있다. 따라서 신라정벌설의 新羅는 경주 신라가 아니라 대마도 시라기이며, 이를 한반도내로 억지 비정하는 것은 한국강점에 대한 명분찾기에 다름아니다.

'언어속에 투영된 한민족의 고대사' 집필을 통해 역사왜곡의 근거가 된 임나(任那)가 고대 한반도 가야지방이 아니라 일본 쓰시마(對馬島), 기비(吉備)에 있었던 한국계 읍락국이었음을 고대 언어 분석을 통해 추적한 언어학자 정연규(전 경북대, 한국외대교수)씨는 일본인들이 신이 내린 물건(神物)으로 여기는 칠지도의 명문도 임나일본부를 왜곡 해석하는데 동원되었다고 주장한다.

칠지도(七支刀.사진)는 일본 나라(奈良)현 텐리(天理)시 이소노가미신궁에 보관돼 있는데 칼날에서 좌우로 각각 가지칼이 세가지씩 뻗어있어 도합 7개의 칼날을 이루고 있다. 닛본쇼기(日本書紀) 신공기(神功紀) 기사에 나오는 칠지도에는 모두 60여자가 새겨져있고, 새겨진 글자의 외곽에 금(金)선이 둘려져 있다. 칠지도가 일본 역사왜곡의 근거가 되는 것은 바로 이 칼에 새겨진 명문의 견강부회식 해석에서 비롯된다.

신공기 52년조는 이렇다. '百濟가 칠지도와 칠자경을 비롯한 각종 귀한 보물들을 가져왔다'. 이를 일본은 여기에 나오는 백제가 마치 삼국시대 백제인 것처럼 주장하면서, 한반도의 백제가 칠지도를 진상한 것처럼 왜곡 해석하고 있다.

이미 상편(7월12일). 중편(7월18일)에서 보았듯이 닛본쇼기에 나오는 百濟는 삼국의 백제가 아니라 일본내 한국계 읍락 구다라(百濟)이며, 또한 왜왕으로 책봉된 백제의 왕세자가 일본의 신공황후에게 칠지도를 헌상한 것이 아니라 아랫사람에게 지침을 주는 내용을 담은 하사품이라고 정 교수는 주장한다.

독자들의 명확한 이해를 위해서 칠지도에 새겨진 명문을 그대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는 판독이 불가능한 글자이고, 괄호안의 (?)는 문맥상 이 글자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한면) '泰和 四年 ?月 十六日 丙年 正陽造 百鍊七支刀

피百兵 宣供供 侯王 奇???

(다른면) 先世以來 未有此刀 百慈(王?)世(자?)奇生聖音

故爲倭王 旨造 傳示後世'.

즉 '태화 4년 9월 16일 병오일 한낮에 강철을 백번 담금질하여 칠지도를 만들다. 능히 백병을 물리친다. 마땅히 후(侯)왕 기(奇?)께 바치기 위해 ???이 만들었다. 선세 이래 이런 칼은 없었다. 백자 (백자는 백제) 왕세자 기(奇)가 태어나니 성상은 말씀하시어 (奇를) 왜왕으로 봉하고, 성지를 내려 칠지도를 만들어 주셨으니 후세에게 전하라'.

마지막에 보이는 '傳示後世'를 풀어보면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이다. '후세에 전하여 보이라'는 훈계조의 글을 담고 있는 이 칼을 백제의 왕세자가 왜왕에게 헌납했다면 앞뒤가 맞지않는다. 명문추적에 이어서 칠지도를 둘러싼 의혹은 또 있다. 오랫동안 비장돼 오던 칠지도를 처음으로 판독한 사람은 이노가미신궁의 대궁사 간마사도모. 간마사도모는 오랫동안 비장돼 오던 칠지도의 녹을 벗겨내고 칠지도에 씌여진 명문을 판독했는데, 칠지도의 명문 가운데 10여자가 보이지 않는다. 혹자들은 명문을 판독한 간마사도모가 일본측에 불리한 명문의 일부 글자를 삭제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간마사도모의 증손자가 가지고 있었던 칠지도에서 벗겨낸 녹의 양이 많았다는 것인데, 구석기 역사까지 날조하는 일본인들이 자기네 역사에서 불리한 칼날의 몇글자쯤이야….

최미화기자 magohalmi@imaeil.com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