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서울 리포트는 일리있다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을 비롯한 신흥시장국들이 선진국 주도의 기존 국제금융질서 개편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공일 전 재무장관 등 11개 신흥시장국 저명인사그룹(EMEPG)은 외환위기를 당했거나 당할 위험이 있는 개도국의 입장을 담은 '서울 리포트'를 5일 서울과 워싱턴에서 동시에 발표했다. 외환위기시 채권자들의 책임분담 등 33개 안을 제안한 이 보고서는 IMF(국제통화기금)를 주축으로 한 미국의 자본규제안에 대체로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내용의 핵심은 자금지원시 BIS비율 8%이상과 같은 선진국식 금융규범을 강요하지 말고 급격한 자본 이동을 규제해야 하며 달러화·엔화·유로화 등 주요 통화의 급격한 환율변동을 막을 장치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 보고서는 상당수 선진국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쳤으므로 국제적인 공감대 형성에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97년이후 한국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IMF식 처방에 대해 논란이 많았다. 위기의 근본 원인은 물론 내부적 부실에 있었지만 우리 고유의 문화와 제도를 무시한 일방적 미국식 개혁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특히 폴 크루그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IMF의 고금리 정책은 해당국의 여건을 무시한 처사라며 신랄히 비판했다. 그러나 한국은 그러한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IMF체제를 벗어난 지금 그 정책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특히 아르헨티나에서는 이미 위기가 시작되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도 '제2의 위기설'이 나돌고 있어 신흥국들의 이같은 '자구책' 움직임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미국의 반대 등 넘어야 할 산도 많을 것이다. 어쨌든 외환위기를 훌륭히 극복한 나라로 인정받고 있는 한국을 중심으로 신흥국의 목소리를 처음으로 집대성한 '서울 리포트'가 신흥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로 하루빨리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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