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산맥을 가다-(3)알타이-(3)몽골에 부는 솔롱고스 열풍

몽골의 대평원은 아직도 옛날 칭기즈칸이 말을 달리던 그 땅 그대로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 말과 야크, 염소와 양. 몽골리안들은 수천년전부터 초원과 더불어 한평생을 보냈고 지금도 그런 생활에는 변함이 없다. 그들의 검게 그을린 얼굴에서는 원주민의 순박함이 묻어 나오고 호탕한 웃음에선 세계를 호령하던 유목인들의 기질을 엿볼 수 있다. 그런 칭기즈칸의 땅 몽골에도 요즘 변화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지난 90년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문명과 돈의 맛을 알게 됐다. 몽골의 국기에서 공산주의를 나타내는 별을 없앴으며 상징마크인 달리는 말에는 사회주의를 뛰어넘어 자본주의로 간다는 의미에서 날개를 달았다.

몽골은 지금 사회주의의 기나 긴 굴레를 벗어나 무지개를 찾아 나서듯 자본주의를 받아 들이고 있다. 칭기즈칸의 후 예들에게 무지개의 나라는 바로 '솔롱고스'. 한국을 지칭하는 솔롱고스란 말은 무지개란 뜻이 포함돼 있다. 말로만 그런게 아 니라 실제로 몽골사람들, 최소한 울란바토르 사람들에게 한국은 무지개 뜨는 나라로 비쳐지고 있다.

몽골인들의 뜨거운 솔롱고스 열풍은 인천국제공항에서부터 후끈 달아 오른다.

몽골 국영 항공사 미아트항공의 울란바토르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늘어 선 사람들. 그들의 절반은 한국관광객이지만 나머지는 몽골과 한국을 오가는 몽골의 보따리 장수들이다. 의류와 생활필수품, 가전제품 등을 담은 보따리를 이고 진 몽골리안 들은 한국의 시장경제에 흠뻑 매료된 사람들이다. 미아트 항공은 보따리 장수들의 넘치는 짐을 통제하기 위해 철저히 오버차지를 메긴다. 울란바토르의 보얀트 오하 국제공항을 나서면 솔롱고스 열풍은 더더욱 거세진다.

시내 거리에는 온통 한국의 중고차들로 넘쳐 흐른다. 아반테, 르망, 엑셀…. 울란바토르는 승용차에서 부터 택시, 봉고 차, 버스, 전차, 트럭까지 50% 이상이 대우, 기아, 현대등 한국 중고차들의 천국이다. 심지어 '급제동 주의','과속 추월금지''00유치원'등 한국에서 수입 당시 붙어 있던 글자를 그대로 달고 다니는 차들도 많다. 현지에서 중고차 가격은 차에 따라 다르지만 3천~7천달러로 꽤 비싼 편이다. 차뿐만 아니라 핸프폰, 티셔츠, 모자, 신발까지 한국상표가 붙어 있는 제품들이 수두룩하다. 한국 볼펜, 가스라이터 등도 몽골인들이 좋아하는 물건들. 울란바토르의 백화점에도 한국산 신발, 화장품, 볼펜, 필통, 초콜릿 등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행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몽골 한국대사관앞에는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몰려 든 몽골인 들로 장사진을 이룬다. 최근 1년간 몽골인들의 한국 비자신청 건수는 7천건을 넘어섰을 정도다. 이 때문에 비자를 발급받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다. 몽골인들에 따르면 정상적으로 비자를 받는데 35달러면 가능하지만 상당수가 100배나 되는 3천500달러 정 도의 비용을 브로커에게 지불해야 한다. 몇년전에는 브로커비용도 600~1천달러면 됐으나 최근에 이것도 크게 인플레됐다는 것이다.

몽골사람들은 여행비자로 한국에 들어가지만 대부분은 불법체류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다. 몽골에서는 한국에 불법체 류하고 있는 몽골인들이 1만5천명에서 2만여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울란바토르의 인구가 70여만명인데 비해 실로 엄청난 숫자다. 이들은 몇년동안 한국에 불법체류하다 자진신고기간에 맞춰 벌금을 물지 않고 몽골로 귀국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타이탐사대는 울란바토르에 체류중 한국을 다녀온 사람들을 무수히 많이 봤다. 탐사대의 현지산행 가이드인 뭉크의 아내, 몽골알타이 최고봉을 세계최초로 등정한 나이땅의 아들, 나담축제 메인스타디움앞에서 만난 바이르마, 몽골의 유명 나이트 클럽 여종업원…. 두명을 만나면 반드시 한명은 직접 한국에 다녀왔거나 가족이 다녀왔다는 얘기를 할 정도로 몽골에서 솔롱고 스 열풍은 거세다. 울란바토르에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몽골리안들이 많아 생활하는데 크게 불편을 느끼지 않을 정도다.

몽골에서는 한국어를 배우기 위한 열풍도 만만찮다. 몽골국립대학 국제관계대학 한국어학과를 비롯 울란바토르에는 5, 6개 대학에 한국어학과가 있을 정도로 한국어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한국어학과를 나오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여 행사에 취직하거나 한국 여행객들의 가이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학교수의 봉급이 월 10만투그릭(1달러가 1천100투그릭)을 채 넘지 못하고 공무원도 5만투그릭부터 시작하는데 비해 정식 직원이 되면 20만원 이상을 받는 한국여행사 가이드가 엄청난 매력이 아닐 수 없다. 한국어학과를 나오면 그야말로 1등 신랑감이 되는 셈이다.

몽골초원에 솔롱고스 바람이 부는 것과 정반대로 한반도에는 몽골바람이 불고 있다. 울란바토르에는 현재 선교사, 여행사, 무역업자 등 소상공인, 생태학자, 유학생, 기업인 등 1천여명의 한국인들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선교사만 해도 무려 100여명이 진출해 있으며 상당수 상공인들이 대규모 여행사와 식당, 술집, 나이트 클럽을 운영하고 있다. 특히 현지의 상인들과 10여개 여행사들은 한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전세계에서 몽골을 찾는 관광객들 가운데 한국사람들이 가장 많은 것도 한국의 몽골열풍을 실감나게 한다. 한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에서는 몽골을 그리 선호하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사람들에게 몽골은 칭기즈칸의 땅이자 초원과 말의 나라요 또한 이들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깝고 생김새가 똑같기 때문이 아닐까.

글=은현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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