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시대를 통틀어 철저하게 권력에 기댄 인물은 유자광(柳子光)을 꼽을 만하다. 자기보다 임금의 사랑을 더받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모함했다고 한다. 함양군수로 온 김종직(金宗直)선생이 자신의 글을 새긴 현판을 떼어내도 분개한 심정을 누르고 도리어 교분을 맺으려 접근했다. 점필재 선생이 성종 임금의 신임을 크게 받은 점을 두려워 했기 때문이다. 이런 처세술은 중종반정에서도 발휘한다. 연산군이 폐위되던 날, 반정세력에 붙어 연산군을 끌어내리고 주체세력보다 앞장섰다던가, 연산군 아래서 절대권력을 휘둘렀던연산군의 심복이 또다른 세력의 '예스 맨'으로 잽싸게 변신한 것이다.
0..중.하위직 공무원들이 행정일선에서 체험한 일을 담은 '작은 새들의 비상'이라는 책에서 힘있는 자리에 갈 수 있고 출세하는 길은 뛰어난 순발력이 요건이라고 적고있다. 예나 지금이나 눈치가 빨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소위 공무원들이 가장 선호하고 있는 감사와 총무 부서에 가기위해서는 윗 사람의 기분을 빨리 알아차리고 이에 맞추는 잽싼 눈치와 행동이 첩경이라는 얘기다. 분위기 파악만으로도 이것은 될 수 없는 법, 승진할 수 있는 자리에 대한 접근은 무어니해도 '유연한 허리'라는 생각도 들게하는 대목이다.
0..'정부미를 먹고 사는 촌놈들의 좋은 세상 만들기'라는 부제(副題)도 달린 이 책에서 하위직 공무원들은 '왜 그런 자리에 가지못해 안달을 하는 걸까'하고 반문은하고 있다. 윗사람이 쓴 판공비도 쉬쉬해야 하는 무거운 입, 상사를 대신해서 책임도 떠안을 줄 아는 책임감이 절대 필요한, 자기희생이 요구되는 그런 자리에 왜 가려고 목을 다는지 모르겠다는 속내다. 그러나 그곳에 가기위해서 얼마나 많은 공직자들이 입을 다물었을까? 그곳에 진출하는 기본인 '예스 맨' 기질에 맞추려고 잠자는 아내와 어린자식들의모습을 헤아릴 수 없이 돌아보았을 지도 모를 일이다.
0..공직사회만 이런 현상이 벌어져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우리는 어떻게 보면 일방통행(一方通行)의 사회에 산다. 어디 의견 개진을 마음놓고 할 수 없다고 봐야 한다. 중대장(中隊長)식의 일방지시가 난무해도 토론요구는 언감생심, 엄두를 못낸다. 그저 '예스 맨'을 키우는 몰개성(沒個性)의 풍토는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정당도 제도에 의한 운영보다는 일인체제의 독선(獨善)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는가 보다. 모든 것을 생각없이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창조는 거의 불가능한 일 아닌가.
최종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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