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이곳은 제일 값싼 인간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이미 세상을 잊어버린 지 오랜 표정으로

행려병자와 생활보호 대상자들이

결핵과 만성간염과 심부전증에 시달리며

눈만 껌벅거리며 누워 있는 곳입니다.

친일파의 자손들은

박사도 되고 교수도 되어

대학병원 특실에 입원하는데

독립운동 유가족들은 의료보호증을 들고

시립병원 뜨락에 구르는

플라타너스 이파리처럼 이곳을 찾아옵니다.

죽게 되면 무연고자로 분류되어

어느 의과대학에 해부용으로 보내질지도 모르는

이들을 보면

죽어서 고국에 돌아왔어도

총독부의 민적이 없다고

매장허가도 나지 않았던 사람,

신채호가 생각납니다

-서홍관 '시립병원에서'

의사 시인의 체험이 묻어있는 시이다. 소위 현실주의적 시관과 역사적 상상력이 발휘된 시라고 할 수 있다. 70, 80년대 우리시의 주류였던 이런 유형의 시에 대해 이미 많은 독자들은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사회의 특권층으로 분류되고 있는 의사가 이런 현실적인 인식을 갖기란 사실 쉽지 않다. 그게 문학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도착된 현실에 대해 분노하는 시인의 진실이 시의 행간에서 뜨겁게 느껴진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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