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로티시즘 남.여가 달라요

남녀간의 사랑이나 관능적 이미지를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암시하는 에로티시즘은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인류의 관심사였다. 오늘날 에로티시즘은 문학.미술뿐만 아니라 사진.광고.패션.영화.컴퓨터그래픽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랑의 발견'(프란체스코 알베로니), 소설가 전경린의 '오후 네 시의 정거장'을 토대로 청년기 남녀 에로티시즘의 일반적 특징을 살펴본다. 물론 예외도 드물지 않다.

♠평범한 날 일상=평범한 처녀 춘향은 스타의 스캔들이나 패션 메이크업 미용 로션 향수 음악에 관심이 많다. 향기로운 냄새를 맡으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그 냄새를 즐기기도 한다. 슬픈 사랑 이야기나 낭만적인 애정소설을 즐겨 읽는다.

역시 평범한 총각인 몽룡은 심심할 때 포르노 잡지를 뒤적거리거나 인터넷 사이트를 훑는다. 가끔씩 포르노 비디오를 보기도 한다. 거리에서 끌리는 여성을 보면 가슴과 엉덩이 다리 등에 시선을 붙박는다.

♠연애시절=춘향은 몽룡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 좋은 카페에 가고 싶다. 친구들에게 몽룡을 소개하고 싶고, 몽룡의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다. 몽룡과 팔짱을 끼고 광장을 거닐거나 연극이나 영화를 보고 싶다. 마주잡은 그의 손에서 강한 믿음을 느낀다. 춘향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영역의 구분을 없애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몽룡이 자신을 사랑한다면 두 사람 사이에 비밀이란 있을 수 없다고 믿는다.

몽룡은 생각이 다르다. 그는 춘향을 밀실에 가둬 두고 싶다. 친구들이 춘향을 구경하는 것도, 행인들이 춘향에게 눈길을 주는 것도 싫다. 춘향과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 모습을 아는 사람에게 보이고 싶지 않다. 공적 영역과 사적영역의 혼합은 무겁고 성가신 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춘향을 사랑하지만 자기만의 비밀과 자기만의 영역을 갖고 싶다. 그는 적당한 기회를 봐서 잠자리를 같이 하는데 관심을 집중시키고 데이트에 임한다.

♠성관계=춘향은 몽룡의 외모에 몹시 끌리지만 그의 비천한 직업을 생각하면 동침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그녀에게 성적도취와 연애는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춘향의 외모에 반한 몽룡은 춘향의 '치사한' 성격이나 남루한 직업, 가난하고 격조 없는 생활태도 따위는 안중에 없다. 몽룡에게 육체의 성행위와 영혼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성행위가 끝난 후에도 춘향은 상대를 오래 껴안고 있고 싶다. 정서의 지속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몽룡은 곧바로 일어나 담배를 피워 문다. 볼 일이 끝났으면 빨리 다른 일을 찾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가 누구라도 마찬가지이다.

♠과거=몽룡은 평생 여러 명의 여자와 성관계를 가진다. 그에게 성행위는 순간적인 육체의 도착일 뿐 애정과 무관하다. 몽룡에게 에로티시즘은 현실의 고통과 미래의 불안을 망각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춘향에게는 지금 사랑하는 몽룡이 전부이다. 그녀에게 성교와 사랑, 육체와 영혼은 하나이며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 춘향에게 에로티시즘은 몸뚱이에 대한 탐닉이 아니라 미래를 건설하는 행위이다. 청년기 여성이 추구하는 에로티시즘의 핵이'언제까지나 함께'라면, 청년기 남성의 에로티시즘의 핵은 '성적 쾌락'이다.

남성과 여성의 이런 차이는 때때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남성이 성행위 후에 갑자기 건조해지면 여성들은 이를 거부와 냉정함으로 해석한다. 또 상대를 짐승 같은 욕망 덩어리로 생각하기도 한다. 반대로 남성들은 오래 껴안고 있기를 바라는 여성의 일반적 특징을 지루하고 성가신 개인적 성격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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