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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빌려 달라는 청이 때로는 사람을 난처하게 만들 때가 있다. 평소에는 잘 보지 않던 책도 빌려주고 나면 참고로 활용할 자료가 그 안에 많이 들어있음을 새삼 알게 되기도 한다.

다 읽은 책이라도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 경우와 서가에 꽂혀서 책등이라도 볼 수 있을 때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무언 중에도 책과의 교감이 일어나는가 보다. 제목과의 눈맞춤만으로도 오랫동안 그 내용이 되살아나기 때문인 듯 하다.

자진해서 나에게 책을 빌려주겠다는 이가 있어도 무임승차를 하는 기분이다. 호의는 고맙지만 읽은 책 속에 앎의 파편이라도 들어있는 양 쉽게 돌려주지 못한다. 결국 다 읽은 책을 다시 사기도 한다.

이런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책도둑이나 책강도들이다. 내가 만든 책이 서가에 두 권 꽂혀 있다면서 한 권을 자신의 가방에 넣는 강도는 그래도 양반이다. 출판사에 소장된 단 한 권 뿐인 책, 심지어는 참고자료로 구입한 책, 기증받은 책까지 슬쩍 챙겨 가버리는 책도둑도 있다.

그들에게는 자신의 서가를 채울 한 권의 책에 불과하겠지만 나로서는 혼을 불어넣어 만든 귀중한 책이거나 소중한 자료일 수도 있다. 책을 지극히 사랑하는 나의 고객이다 보니 짐작은 하여도 그들의 인격에 흠집을 낼 수는 없다. 자진해서 도둑보다 용렬한 사람이 되고싶지 않아서다.

책도둑을 과일서리 쯤으로 여기는 관용은 책의 교환가치나 효용가치가 결코 작아서가 아니라 가난한 문사의 향학열을 어여삐 여긴 데서 기인한다. 최근 학교 도서실, 대학 도서관, 공공 도서관으로부터 책 기증을 요청하는 공문이나 서신을 자주 받는다.

우리 사회가 책에 관한 한 왜 이렇게 인색한지 모르겠다. 이들 기관들이 책을 한 권씩만 구매해도 대다수 책들은 제작원가의 절반을 충당할 수 있다.

만날 때마다 되돌려 받지 못한 책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주인 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아직도 나의 서가를 지키고 있는 책들로 위안이라도 삼아야 할까보다.

장호병〈도서출판 북랜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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