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영웅'을 기다리며

신참 기자 '밥 우드워드'는 고비 때마다 신문사 지하 주차장에서 익명의 제보자를 만난다. 어두운 공간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우드워드에게 진실을 말해주고는 등을 돌려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은 영화에서도 종종 표현되는 명장면이다.

목소리가 얼마나 굵고 깊었던지 주차장에는 그의 말이 공명(共鳴)을 일으켜 반복되고 우드워드의 얼굴은 다시 환해진다. 이름하여 딥 스로트(deep throat). 72년 닉슨 대통령을 하야시킨 '워터 게이트'는 이렇게 워싱턴 포스트의 특종으로 시작됐다.

그러나 워터게이트의 내막이 완전히 밝혀지기까지 '딥 스로트'와 우드워드의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또 한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인 캐서린 그레이엄 여사다. 그녀는 정보기관으로부터 숱한 위협과 협박을 받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우드워드의 특종을 낱낱이 보도했다.

권력에 맞서 독립 언론의 위상을 지켜내고 국민의 알권리를 신장시킨 그레이엄 여사는 미국의 역사를 바꾼 인물로 추앙받고 있다. 지난해 그녀가 타계하자 부시 미국 대통령은 "캐서린은 냉철하지만 부끄럼이 많고, 강하지만 교만하지 않은 여성이었다"며 인품을 칭송했다.

진실은 이렇게 밝히기 어려운 것이다. 미국이 내부고발자를 철저히 보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워터게이트 이후 30년이 지난 오늘날, 미 시사주간지 '타임'이 FBI(연방수사국)를 비롯 대기업들의 문제점과 비리를 폭로한 여성 내부 고발자 3명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FBI 전 요원 콜린 로울리(48)와 월드컴 내부 감사였던 신시아 쿠퍼(38), 엔론 전 부사장 셰런 왓킨스(43)다. 이들은 관료주의에 찌든 FBI의 내부 사정과 대기업의 회계 부정, 주가 조작을 폭로했다. 타임은 "세 여성은 9.11 테러 현장의 소방대원들과 같은 영웅들"이라고 칭송했다.

만약 밥 우드워드와 세 여성이 한국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영웅 대접은커녕 아마도 배은망덕한 놈, 제 직장을 고발한 인간말자 정도로 몰매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에도 내부 고발자가 더러 있긴하다.

그러나 선거를 앞두고 당략을 노린 네거티브성 폭로거나 사사로운 이익을 위한 음해성 양심 선언이 대부분이다. 진실이 왜 필요한가. 진실은 왜 목숨보다 소중한지를 일깨워주는 대목이 아닐수 없다. 우리 사회가 '총체적 불신'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 우리의 '진실 게임'은 어느 수준인지 세모(歲暮)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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