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말집 호롱불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조랑말 말굽 밑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은 여물 써는 소리에 붐비다.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

-박용래,'저녁눈'

시인의 가슴은 순수하게 열려 있다.

시인의 눈으로 보면 아주 하찮은 어떤 실상이라도 하찮은 것으로 되어 있지 않고 살아 있는 존재의 섬광을 띠며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다.

사라져 가는 존재의 순수한 실상들이 영화의 스냅처럼 재구성되어 새롭게 편집되어 있다.

그것은 광활한 시간의 대지(大地)가 보여주고 있는 삶의 파편이다.

그 파편이란 사라지는 것 속의 적막과 안식, 그리고 어떤 허전함의 연민이라 할 수 있다.

권기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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