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데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김수영 '절망'

하이데거는 회의 없이 기성가치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한평생 잠자는 사람, 즉 세인(世人)이라 했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고 절망이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그냥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깨어 있는 자는 끊임없이 존재에 의문을 던지며, 구원의 바람이 다른 데서 오듯 새로운 사태를 불러 일으킨다.

김수영은 그것을 강조하고 있다.

권기호 〈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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