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웃옷 모두 벗기운 채

맨살로 차가운 기계를 끌어안는다

찌그러지는 유두 속으로

공포가 독한 에테르 냄새로 파고든다

패잔병처럼 두 팔 들고

맑은 달 속의 찾아

유방암 사진을 찍는다

사춘기 때부터 레이스 헝겊 속에

꼭꼭 싸매 놓은 유방

문정희 '유방'중

생명의 봉우리가, 영원히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던 일기장(레이스로 싸매둔 유방) 같은 것이 백일하에 드러나 삭막하고 억울한 심정이 된다.

그것도 차가운 전자파의 시선이 뜨거운 생명 감성과는 관계없이 유두 찌그려 놓고 문장 구석 헤집으며 암의 검은 모순 찾고 있다.

모든 여인은 이 순간 또 한번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는 기분이 된다.

권기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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