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檀君) 가륵편 '한단고기'에 '지방마다 말이 서로 틀리고 형상으로 뜻을 나타내는 참글이 있다 해도 열 집 사는 마을에도 말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백리 되는 땅의 나라에서도 글을 서로 이해키 어려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런 상황은 삼국시대까지 이어졌을는지 모르지만, 고구려·백제·신라 등이 공존하던 삼국시대의 한반도와 이에 연결된 대륙의 일부에는 세 나라의 세 가지 언어가 있었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하지만 7세기 후반 백제와 고구려가 잇따라 멸망한 뒤 그 사정은 달라져 점차 신라어로 통일됐을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우리말이 된 한문'이라 할 수 있는 '이두(吏讀)'와 신라 향가(鄕歌) 문학의 발전과 깊은 관련이 있는 '향찰(鄕札)'은 신라에서 한문에 능통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지고 발전했다는 게 지금까지 가장 유력한 학설이다.
그러나 기원 이전부터 사용됐거나 기원 직후부터 사용됐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도 없지는 않다.
만약 그렇다면 설총은 항간에 쓰이는 이두의 여러 쓰임새를 정리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지난 2000년 충남 부여 능산리 고분군 옆에서 출토, 부여박물관에 소장 중인 목간(木簡)의 내용이 가장 오래된 백제 시가(詩歌)인 것으로 밝혀져 화제다.
서울시립대 김영욱(국어학) 교수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나무 조각에 문자를 기록한 이 목간의 '숙세결업동생일처시비상문상배백래(宿世結業同生一處是非相問上拜白來)'라는 글은 사언사구(四言四句) 형식에 백제인이 이두로 기록한 최고의 시가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 시가는 '전생(前生)에서 맺은 인연으로/이 세상에 함께 났으니/시비(是非)를 가릴 양이면 서로에게 물어서/공경하고 절한 후에 사뢰러 오십시오'라고 풀이된다.
서울대 이종묵(국문학) 교수도 이를 '부부가 함께 부처님 앞에서 죽은 뒤 같은 곳에서 태어나기를 기원하는 발원문'으로 봤다.
현재 전하는 백제 시가는 이 왕조 멸망 800여년 뒤인 조선 시대의 '악학궤범(樂學軌範)'에 실린 '정읍사(井邑詞)'가 유일하다는 점에서 획기적이지 않을 수 없다.
▲'정읍사'는 작가·연대가 미상이며, 백제 때부터 구전해 민간에 전승된 시가로 알려져 있다.
신라 경덕왕 때 이후, 또는 고려시대 구백제 지방의 민요로 보거나 고려 충렬왕 때 개성 주변에서 만들어졌다는 견해도 있다.
'정읍사'도 오랜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기 때문에 백제 시대 그대로의 것은 아닐는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까지 백제 시대 유일의 시가로 알려져 왔다는 점에서 이번 목간의 이두로 기록된 시가의 발견은 이 분야의 연구에 새로운 길 트기를 하게 하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음에는 틀림없으리라.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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