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웃음잃은 政治

클린턴이 엘 고어 부통령에게 '일일 대통령'을 해보라고 권했다.

"고어, 당신에게 대통령직을 맡기겠소. 오늘 하루만큼은 내 모든게 당신거요". 그러자 고어는 놀라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물었다.

"힐러리도 맡아야 하나요?"(풍자집에서). 그 힐러리가 낸 회고록 '리빙 히스토리'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녀는 책에서 "남편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고 그때의 비통함을 토로했다.

그러나 힐러리는 클린턴의 '지퍼 게이트'를 '견딜 수 없는 고통'에서 풀어 놓는다.

두사람의 인생 목표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그 힐러리가 대통령이 된 남편과 함께 금의환향, 그 곳에서 그녀의 옛 애인을 만난다.

그때 장난기가 발동한 클린턴이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나와 결혼한 건 참 행운이야. 대통령 남편 만나는 것, 그거 하늘의 별따기지". 그러자 힐러리는 이렇게 되받았다.

"나와 결혼했으면 저 양반이 대통령이 됐을텐데…".

정치를 살찌우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 '유머'임을 서양사람들은 잘 터득하고 있다.

22년전 3월, 지금은 '알츠하이머'에 시달리고 있는 레이건 미 대통령이 저격을 당했을 때의 한마디는 대통령 유머의 걸작으로 기록된다.

모두가 혼비백산한 그 와중에서 아내 '낸시'가 달려오자 그는 후송침대에 누워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여보, 피하는 걸 깜빡 잊었어". 서양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DJ의 유머감각은 합격점이다.

TV 토론 '국민과의 대화'에 나왔던 한 시민이 "고통분담차원에서 대통령 월급 반납하면 어떠냐"고 묻자 DJ는 그럴 용의가 있다며 덧붙였다.

"아, 나야 청와대에서 밥먹여 주겠다, 잠재워 주겠다 걱정없어요". 이 '조크'는 당장 딱딱한 분위를 녹여 버렸다.

어디서 한번씩은 들었을 이 구문(舊聞)들을 '리바이벌'해 보는 것은 새정권 출범 이후 우리의 정치판에 도무지 '유머'가 보이지 않아서다.

그나마 웃겨주던 전라도 토종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 마저 대치정국에 안면근육이 마비됐는지 영 웃는 얼굴이 아니다.

유머는 정치를 살찌게 하지만 독설은 정치를 삭막하게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 한국정치엔 독설만 보인다.

폭소 한번이 에어로빅 5분의 운동효과가 있다는데도 뉘우침이 없다

촌철살인(寸鐵殺人)이라던 대변인의 언행도 이젠 막말제조창이 돼버린 듯하다.

여당의 부대변인이란 사람은 노무현 대통령을 씹은 YS의 독설에 화가 나 아예 구강청정제를 택배로 보냈다.

그러나 보냈다는 발표자체가 거짓말이어서 또다시 웃음거리가 됐다.

'DJ이적행위'를 논한 최병렬 대표에겐 냉수와 신경안정제를 보낸다고 했는데 스스로도 너무 유치했는지 그후론 소식이 없다.

유인태 정무수석도 "노(盧)가 잘하기는 다 틀렸다"는 YS의 독설, 최대표의 직설(直舌)에 심사가 뒤틀렸는지 "허무개그 말라"고 쏘아붙였다.

청와대 정무수석이란 자리는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는' 그런 자린데 그만 복(伏)더위를 먹었는지 거꾸로 가버린 것이다.

중매쟁이가 이러면 영수회담이고 뭐고 대화하기는 텄다.

참모들까지 이러니 노 대통령과 최 대표의 감정싸움 같기도 하고 자존심 싸움 같기도 한 이 싸움이 쉬 끝날 것 같지 않다.

당초 최 대표는 대표 당선 소감에서 영수회담을 제의해 놓고 딴 자리에서 대통령 불인정 '심정'을 내뱉었다.

청와대는 불쾌했고, 방중(訪中)후 자동(自動)이던 영수회담은 접혀버렸다.

한술 더 떠 대통령은 엊그제 특별 기자회견에서 "영수회담은 여.야 당대표가 하는 것이지 대통령 하고 하는게 아니다"는 식으로 영수회담의 개념 자체를 바꿔버렸다.

이에 최 대표는 "하든지 말든지"오불관언, 코웃음이다.

둘다 '유머 결핍 증후군'에 단단히 걸린 것 같다.

국민의 68%가 개혁피로증에 걸려있고, 노 정권의 지지도가 38%로 곤두박질 쳐 있는 판국에 서로 만나지도 않는다니? 신임대표의 리더십이 목하 시험대에 올라있고, 더구나 향후 정치발전에 야당의 역할론이 중차대한 이 판국에 대여(對與)강수만 놓겠다니? 이러다간 정말로, 선수선발 잘못했다는 소리 나올지도 모르겠다.

'유머'가 묻어나는 정치에 목이 타는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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