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하는 오후

외진 별정우체국에 무엇인가를 놓고 온 것 같다

어느 삭막한 간이역에 누군가를 버리고 온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문득 일어나 기차를 타고 가서는

눈이 펑펑 쏟아지는 좁은 골목을 서성이고

쓰레기들이 지저분하게 널린 저잣거리도 기웃댄다

놓고 온 것을 찾겠다고

아니, 이미 이 세상에 오기 전 저 세상 끝에

무엇인가를 나는 놓고 왔는지도 모른다

신경림'떠도는 자의 노래'부분

플라톤은 완전무결하고 영원한 세계를 이데아라 했다.

우리의 현상계는 이데아를 모방한 모사품이다.

그래서 미적, 윤리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은 기억 속 아득한 마음의 본고향(이데아)의 흔적이 모사품 속에 있는 줄 알고 항시 헤맨다.

무엇인지 확실하게 모르면서 이 세상인지 저 세상인지, 그리운 이들 마음 속 희망인지, 골목 안인지, 떨어뜨린 분실물 같은 상실감 때문에 평생 방황하는 것이다.

권기호(시인·경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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