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에 이사오고 난 뒤부터 시어머니께서는 하루종일 텔레비전만 보셨다.
평생 농사일을 하셨던 때문인지 아파트 생활을 감옥살이라고 늘 불평하셨다.
채소라도 가꾸면 얼굴이 펴지시려나 싶어 텃밭을 수소문했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는 것인지 드디어 텃밭을 구하게 되었다.
유리조각, 녹슨 못, 폐비닐 따위가 묻혀있는 버려진 땅이었다.
시어머니와 나는 주워낸 자갈과 돌덩이로 밭 두렁을 쌓으며 텃밭을 일구었다.
일흔 아홉 살 시어머니께서도 모처럼 제 자리를 찾은 듯 아주 흡족한 미소를 머금고 계셨다.
나는 시어머니의 얼굴이 저렇게 부드러웠나싶어 한참 바라보았다.
늘 딱딱하게 굳어있던 표정은 관음상처럼 부드럽고 푸근해 보였다.
사랑니처럼 뿌리깊게 박혀있는 돌을 빼낼 때 자식농사란 말이 떠올랐다.
우리의 부모님들도 텃밭을 일구듯이 자식을 키웠으리라. 작은 돌을 캐내면 더 큰 돌이 뿌리를 깊게 박고 있었다.
자갈 투성이 밭일지라도 돌을 캐내고 거름을 뿌려 비옥한 토지로 가꾸는 일은 자식을 키우는 일과 같다.
아무리 비옥한 토지를 갖고 태어난 아이일지라도 잘 가꾸지 않으면 황무지로 변한다.
자갈을 캐내고 거름을 주고 객토를 해주면 황무지였던 아이도 옥토가 되는 것이다.
나는 욕심 때문에 아이의 가슴에 날카로운 유리조각을 심은 적이 많았다.
자갈밭을 일구면서 나는 내 마음 한 귀퉁이에 박혀있는 유리 조각과 자갈 몇 개도 슬쩍 빼서 밭둑에 던졌다.
여름들판에는 갖가지 채소들과 풀들, 들꽃, 풀벌레들이 더불어 살고 있었다.
더불어 사는 것을 배운 아이들, 사랑과 기도를 거름하여 자란 아이들은 건강하다.
그 아이들이 자라나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거름이 되는 것이다.
시어머니께서 고랑을 만들어 상추씨와 배추씨를 뿌리신다.
시어머니의 밭고랑 같은 주름을 햇살이 환하게 비춘다.
자갈을 파낸 흙 사이로 저녁 노을이 축복처럼 스며든다.
김옥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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